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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성일 May 22. 2020

#11 그가 살짝 열어준 뒷문

미썬 유적지와 참 문자


'경기도 다낭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베트남 중부 도시 다낭(Đà Nẵng)은 최근 몇 년간 한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해외여행지로 꼽히고 있다. 한국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 저렴한 물가와 넓은 해변, 예쁜 도시 호이안(Hội An) 등 다채로운 매력이 있기에 늘 한국 사람들로 붐벼 농담으로 '경기도 다낭군'이라 불릴 정도이다. 그 많은 매력 중에도 나를 끌리게 한 것이 있었는데, 오랜 세월 남베트남 지역에 터 잡았던 참파 왕국(Chăm Pa)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었다. 


다낭에서 느낀 첫인상이 묘했다. 베트남 특유의 중국풍 건축 양식과 인도 종교 사원이 보이는가 하면, 유럽식 가톨릭 성당이 존재감을 뿜는 곳. 그런 배경에 라틴알파벳 간판과 공산주의 프로파간다 포스터가 거리 곳곳에 붙어 있는 진기한 풍경이었다. 다낭은 마치 다리처럼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유럽을 하나로 잇는 곳이었다.


해변에 누워 있기에는 볕이 너무 뜨거워질 즈음, ‘참 조각 박물관(Museum of Cham Sculpture)’으로 갔다. 박물관은 베트남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속해 있던 1915년 7월, 프랑스인의 집을 개조해 세워졌다. 아담한 규모이지만 12-15세기 참파 왕국의 조각 2,0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사암으로 만들어진 사원 기단, 미썬 유적 E1


참족(Chăm)이 세웠던 참파 왕국의 조각 양식은 힌두교 신화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시바 신의 상징 링가와 요니, 비슈누 신과 가네샤 신의 조각을 보며 베트남 남부에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참 족도 고대 크메르 민족처럼 인도 문화권에 속했음을 알 수 있었다. '베트남이 지금은 비록 라틴알파벳을 쓰고 있지만, 크메르 문자처럼 먼 옛날에는 인도에서 온 문자를 사용하진 않았을까?' 짐작만 하면서 조그만 기념품샵을 쓱 둘러보고는 단출한 박물관을 나왔다.



베트남의 앙코르, 미썬 유적


그날은 긴 여행에 지친 탓에 조금 쉬어가는 날이었다. 지친 몸과 맘을 환기할 겸, 시원한 저녁에 산책을 나섰다. 늦은 시간에도 불을 환히 밝힌 여행안내소에 걸린 한 문구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베트남의 앙코르, 미썬 유적지” 광고 문구에 끌려 들어가 자세한 내용을 물었다. 지난번 참 조각박물관에서 미썬 유적(Mỹ Sơn relics)의 유물을 보면서 참파 왕국의 역사가 궁금했지만 실제로 방문할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다낭에서 한 시간만 가면 볼 수 있다니! 그것도 반나절만에 돌아온다는 말에 당장 다음날 아침 투어를 예약했다. 


아침 일찍 도착한 출발지에는 서양 여행자들이 많았다. 가이드가 모두에게 영어로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우리가 지금 가는 곳은 '내 아들(My Son)' 아니죠, 미썬(Mỹ Sơn)입니다. ㅎㅎㅎ" 다 같이 밴에 올라타 한 시간 정도를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미썬 유적지는 남쪽의 고대 도시 비자야(Vijaya)와 함께 4-13세기까지 9백여 년 동안 참파 왕국 종교의 성지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중앙 정글 속에 유적 70여 개가 감춰져 있다. 4세기 말 참파 왕국의 바드라바르만(Badravarman) 왕이 힌두교의 파괴와 창조의 신 시바를 모시는 목조 사당을 지으면서 미썬 유적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 8-13세기 말까지 지어진 벽돌 사원이다. 미썬 유적은 참파 왕국이 멸망한 뒤 한동안 정글에 묻혀있다가 19세기 프랑스 탐험가들에게 다시 발견되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 미얀마의 바간(Bagan), 태국의 아유타야(ayutthaya), 인도네시아 자바 섬의 보로부두르(Borobudur) 등 동남아시아 주요 유적들에 비해 규모는 작으나 고고학, 인류학적으로 동남아시아의 역사를 연구하기에 매우 중요한 곳이다. 아쉽게도 베트남 전쟁 때 폭격으로 유적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지금도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미썬 유적지 전경. ⓒ2017 Noh Sungil.


광고에서 비교한 앙코르 유적만큼 규모가 크진 않으나 1천 년 동안이나 온갖 풍파를 이겨낸 참파 왕국의 흔적은 건재했다. 가이드를 따라 크고 작은 사원들이 군집한 광경을 감상하다가 멀찍이 홀로 서 있는 새까만 비석 하나를 발견했다. ‘혹시 참 족이 쓰던 고대 문자가 새겨 있진 않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단숨에 달려가 보니 정말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2017 Noh Sungil.
참파 왕국에서 쓰이던 참 문자. ⓒ2017 Noh Sungil.


동글동글한 모양을 보니 남인도 계열 문자가 분명했다. 이전에 찍어둔 씨엠립 롤레이 사원의 문자와 비교해 보았다. 얼핏 보면 비슷했으나 약간 달랐다. 위쪽에 머리카락 형태가 보이지만, 롤레이 문자에 비해 글자의 높이가 일정하고 행간이 세 배는 넓어 가독성이 매우 좋았다. 약간 비스듬한 형태를 보면 필사를 기반한 글꼴이 보편화된 시기에 적힌 것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나중에 연구하면서 안 것인데, 참 문자도 남인도 팔라바 왕국의 팔라바 문자를 조상으로 하고 있다. 크메르 문자와는 사촌 격이라 할 수 있다.


안내받은 대로 반나절만에 짧은 투어는 끝이 났지만, 참 문자를 만난 것 하나로도 충분히 보람찬 선택이었다. 미썬 유적 투어에서 돌아오자마자 오토바이 택시에 올라타 참 조각 박물관 후문으로 다시 갔다. 경비가 막아섰다. 

“죄송합니다. 입장은 정문으로 해주세요.” 

“기념품샵에만 들르려 해요. 잠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가 살짝 열어준 문을 통과해 기념품샵에서 책 한 권을 곧장 집어 들었다. 살까 말까 고민했던, 참파 왕국의 역사를 그림과 사진으로 자세히 소개하는 책이었다. 그늘도 없이 너른 뙤약볕 아래서 낯선 문명을 몸으로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이 책을 사러 굳이 먼 길을 되돌아올 수 있었을까?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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