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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성일 May 28. 2021

같은 시간선에 놓인 삶

<미얀마 8요일력> 8화

<미얀마 8요일력> 연재를 하면서 달력에 담긴 다양한 개념을 알아보고 있다. 어느 누구도 태어난 순간부터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을 기록하는 매체인 달력은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아주 먼 옛날 시계와 달력이 없던 시절을 상상해보자. 때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최초의 동기는 변화무쌍한 자연에 적응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공동체의 우두머리는 생존과 번영을 위해 자연과 천체를 관측하면서 때를 예측하고 적절한 방향성을 제시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수많은 공동체와 민족이 모여 사는 지구에는 그 공동체의 숫자만큼이나 무수히 많은 시간의 기록이 켜켜이 쌓였다.  


다르게 흘러가는 저마다의 시간



흐르는 시간선


마침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월말을 며칠 앞두고 있다. 월말이 되면 의식처럼 벽에 걸린 달력을 한 장 떼어내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달을 맞이한다. 달력을 넘기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기록한 달력을 한 장, 두 장, 열 장, 백 장, 무한히 넘기면 어느 순간 달력은 어제와 오늘, 내일을 잇는 하나의 기다란 선이 된다는 것. 이 기다란 시간선(線), 조금 더 익숙한 단어로 타임라인(timeline)에는 내가 살아간 삶의 궤적과 사건이 차곡차곡 쌓인다.


날과 날이 만나 거대한 시간선을 이룬다. (c) Noh Sungil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세계 표준시(UTC)'라는 거대한 시간선 위를 지나간다. 그 거대한 시간선 안에는 멀리서는 보이지 않는 다양한 문화권의 수많은 시간선이 흐르며, 각자의 시간선 위로 제각각의 사건이 매 순간 새겨진다. 한 공동체는 기념일과 신념, 종교 등을 통해 공동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쌓인 하나의 시간선을 공유한다. 그러다가 때론 공동체끼리 문화의 교류, 전쟁이나 무역 등 공통의 사건으로 서로의 시간선이 교차되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시간선이 만나는 사건을 겪고 나면 시간을 세는 방법이 일부분 닮기도 하고, 때론 합쳐지기도 한다. 현대 사회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에도 수많은 시간선이 합쳐진 흔적이 있다. 그레고리력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n) 문명에서 24시간제 하루와 일주일 체계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는 양력 계산법을, 예루살렘(Jerusalem)에서는 일주일과 주일(Lord's day) 개념을 가져왔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월 이름에는 로마 제국의 흔적이 남아 있다. January(1월, 문을 여는 양면성, 야누스 신의 달), February(2월, 로마 정화 의식에서 유래),... July(7월, 로마 황제 카이사르의 이름),... 이처럼 그레고리력에는 인류의 시간 기록이 집대성된 결과가 담겨 있다. 



다르게 흘러가는 세계 시간도 결국 하나의 기준을 따른다.



시간의 지배


이 모든 역사가 시간을 재는 도구인 달력을 통해 오늘 우리의 시간선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놀랍다. 2천 년 전 로마 시대가 대한민국에서 오늘을 사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하지만,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시도 로마의 시간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소름이 돋는다. "Happy New Year!" 매년 연말 나는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카이사르가 선포한 날을 새해로 맞이했다.


공동체가 같은 시간의 틀을 공유한다는 뜻의 이면에는 통치자의 효율적인 지배가 가능하게 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카이사르가 선포한 율리우스력(Julius calendar)은 로마 제국 모든 정복지 주민이 똑같은 방법으로 시간을 측정하게 했다. 그리고 중세 시기 주일(일요일)은 가톨릭 교회가 정기적으로 경제적, 사회적 시간을 지배하는 시간이었다. 


오늘날처럼 모든 인류가 동일한 시간을 살아가게 된 것은 한 세기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리니치 평균시(Greenwich Mean Time, GMT)를 기초로 한 세계표준시는 영국으로 대표되는 유럽 세계가 근대 산업화 시기의 효율적이고 빠른 소통을 위해 형성한 구조 안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양곤 시내의 하루가 또 지나간다.



미얀마의 시간선


오래전부터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존재해온 미얀마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그만큼이나 다양한 시간선과 교류한 흔적이 남아 있다. 앞 연재 글들에서 알아봤듯이, 미얀마 달력에는 여러 민족이 세운 왕국과 종교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인도에서 들어온 점성학적 계산법, 힌두교 축제들과 낫 신앙의 흔적, 불교력의 일상이 달력에 그대로 담겨 있다. 그리고 식민지배를 했던 영국의 흔적도 남아 있다.


유럽 열강이 아시아 지역을 침략하던 신제국주의 시기 미얀마에는 프랑스를 견제하여 영국군이 들어왔다. 인접한 인도가 영국의 지배에 들어간 1858년에서 불과 몇 년 안에 버마의 마지막 왕조인 꼰바웅(Konbaung) 왕조가 멸망하고 영국의 식민 지배(1886-1948)가 시작되었다. 이때 서양의 그레고리력이 미얀마 사회에도 전해졌다. 오랜 세월 익숙한 방식이 아닌 전혀 새로운 틀에 맞춰 하루를 살아야 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당시 끊임없이 전개된 독립운동을 달력과 연관 지어 본다면, 미얀마의 독립운동은 어쩌면 서양식 시간의 지배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일지도 모른다. 지배자의 시간이 아닌 미얀마 사람들 스스로 쌓아 올린 시간선 아래에서 그들의 시간과 리듬에 맞는 삶을 살고자 치열하게 싸운 것이라 생각해본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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