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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파도를 타는 디자이너에게

AI 시대 디자이너가 지녀야 할 자세

by 너머

미래와 현재를 고민하는 글을 쓸 때마다, 우리는 어김없이 ‘시대의 변화’를 이야기하게 된다. 뻔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자주 언급되지만, 그만큼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앞에서 이 주제를 피해 가기는 어렵다. 기술은 가속도를 더해 진화하고 있고, 정보는 어느새 계층을 만들어냈다. 안주하는 사람과 변화를 기회 삼는 사람 사이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으며, 디자이너는 그 가장자리에서 복잡한 판단을 요구받는다.


디자인 업계만큼 양극화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직군도 드물다. 이미 오래전부터 디자이너는 ‘오퍼레이터형’과 ‘기획형’으로 나뉘었다. 누군가는 지시된 대로 정교하게 결과물을 내는 데 집중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문제를 정의하고 방향을 설정하며 더 넓은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


이제는 그 구분조차 모호해졌다. 누가 더 AI를 잘 다루느냐의 경쟁을 넘어서, 영상·3D·그래픽·아트디렉션까지—본래라면 각자 다른 전문가가 맡았을 역할을 한 사람이 ‘뚝딱’ 해내는 시대가 되었다. 다시 말해, 혼자서 에이전시 한 팀을 대체하는 디자이너가 있는가 하면, 점점 변화의 중심에서 멀어져 가는 디자이너도 있다. 이 양극화는 실력의 차이라기보다 ‘파악하고 활용하는 속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변화가 마냥 반가운 일은 아니다. 다기능 디자이너가 되는 것은 효율의 관점에서는 ‘좋은 일’일지 몰라도, 기업 안에서는 종종 착취의 구조로 이어진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영상도, 3D도, 기획도, 디자인도 다 해달라는 요구는 갈수록 노골적이 되어간다. 디자이너는 회사가 필요로 하는 ‘도구’가 되어가고, 그 안에서 번아웃은 빠르게 찾아온다.


나는 이 과도기에서 디자이너가 취해야 할 전략은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시대와 기술을 빠르게 익히되, 그 전부를 회사에 내어주지는 않는 것. 역량을 실무에 조금씩 녹여내며 스스로 실험하고, 협상의 카드로 삼을 것. 그리고 결국에는, 그 모든 경험을 기반으로 독립적인 수익 구조를 설계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


회사가 요구하는 속도와 방향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더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지금의 업무를 통해 기술과 감각을 익히되, 그 모든 경험을 결국 ‘내 일’로 이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더 이상 하나의 역할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방식이자 태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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