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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실 Aug 09. 2020

5장. 이런 토요일 오후

이런 토요일 오후가 참 좋다.

서재에서는 신랑이 공부하느라 인터넷 강의 강사의 목소리가 빠르게 흘러나오고,

나는 부엌에서 어제 빌려온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오, 이런 순간, 찰나 너무 좋은데? 글이나 써볼까?’ 싶어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지난 3주가 조금 넘게 나는 번아웃 상태를 겪었다.

 오랫동안 준비해오던 발표를 두 번이나 끝마쳤다.

결과는 내 기준에서는 만족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 성과가 있었다.

무엇보다 큰 깨달음을 얻었다.

 발표 준비를 하면서 두 번 다시 회사에서 업무 이외 활동을 하지는 말아야겠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무언가 억압받았던

 ‘운동 출석체크’에서 조금은 벗어났다.

 3개월간 무제한 운동 클래스 등록을 하고

 일명 ‘뽕 뽑아야지’라는 생각에

과도하게 무리하게 운동을 다니다가 손익분기점을 넘어섰기에 안심하고 집에 있을 수 있다.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나는 굉장히 쿨하고, 세상 걱정 없이 해맑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회사 사람들은 내가 밝게 밝게 해피 해피한 사람이라 심지어 ‘활력소’로 옆에 두고

일하고 싶다는 동료도 있었다.

물론, 내가 타인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기분은 좋다.

하지만, 그런 타인의 시선이

나를 그렇게 만들 때도 있다.

나는 어두우면 안 되고, 슬퍼서도 안 되는

 ‘해피 인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내면적으로는 더 어두워지는지도 모른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나는 고민거리에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고나 할까?

다들 저마다의 고민거리가 있듯이 나 또한 이것저것 생각하고 고민하는 부분은 매 순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 고민거리의 무게에 나의 인생 무게를 실어 보내진 않는다.

딱 그 정도. 고민거리 정도의 무게만을 저울에 달아놓고 하루 이틀 정도 저울질을 하다가 빠르게 결정을 내려버린다. 그리고선 후회 없이 돌아보지도 않고 저울질에서 빠져나온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스트레스는 어떨까? 나는 20대에 대상포진을 2번이나 겪었다. 처음 대상포진은 21살 때 영어공부를 하면서 발병했다. 유학 가기 전에 영어공부를 하려고 스파르타식 토플학원을 다녔다.

하루에 외워야 할 단어가 200개이며 풀어야 할 문제가 200개였다.

스파르타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 달이 채 안돼서 바로 대상포진이 튀어나왔다.

물론, 학원은 바로 그만두었다.


두 번째 대상포진은 입사하여 대리급 4명이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맡아 개발하고 오픈했던 시기에

발병했다.

다행히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오픈 후 2주 만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폭발하면서 대상포진으로 튀어나왔다.

외적으로는 굉장히 평온해 보이고, 세상 걱정 하나도 없는 아이처럼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외면적 표현은 치밀하게 계산되어 표출하는 나의 가짜 모습일지도 모른다.


혹은 SNS 세상 속의 누구나처럼 행복한 척 병에 빠져 항상 웃는 건지도 모른다.

정확한 이유야 모르겠지만 회사에서의

나의 모습이나,

대중 앞에서의 나의 모습은

 온전한 나의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런 토요일 오후에 목 늘어난 티셔츠에 편안한 잠옷 바지를 입고

 동글뱅이 안경을 끼며 타자를 치는 나의 모습이

 진짜 나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이런 토요일 오후가

너무 따스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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