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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세화 Nov 16. 2019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 上

가난하면 더 가난해진다 

제 재산은 23살 때 백만 달러를 넘었고, 24살 땐 천만 달러를 넘었으며 25살 땐 1억 달러가 넘었는데요. 저에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사업의 목적을 돈으로 봤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죠. 저는 돈이 훌륭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단기간 내 자금회수가 가능하지 않는 아이디어에도 투자를 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그렇지 않다면 제게 돈은 생계유지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 스티브 잡스 

최근 몇 번의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돈에 대해 부쩍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살아서 지옥을 체험했으나, 돈의 가치와 부자 또는 가난한 사람이 되는 이치를 깨달았으니, 그런대로 소득도 있었다. 


비교적 가난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고, 물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런던에서 유학생활을 했으며, 불안정한 직장생활로 반평생 쪼들리는 삶을 살았던 나는 한 순간도 돈 걱정에서 자유로워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사업 때문에 타격을 입기 전까지, 저금통에 넣어둔 동전까지 탈탈 털어 쓰며 지지리 궁상을 떨거나, 남에게 아쉬운 소리하며 돈을 빌리거나, 카드대금을 연체하거나, 카드사로부터 독촉 전화를 받으면서 공포에 떨 만큼 절박해 본 적은 없었다. 사업한답시고, 몇 년 동안 밥벌이를 포기한 채 지지부진한 매체 유지하는데 돈을 쏟아 붓다가 급기야 심각한 상황을 맞았다.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산소만큼은 중요하다.”
(리타 데이븐포트), 
“어린 시절 나는 돈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나이가 들어보니 그 생각이 옳다.”(오스카 와일드) 
“빈 자루는 서있지 못한다.”(영국속담) 


돈한테 극심한 시달림을 받고 나면 이런 명언을 듣고 무릎을 치게 된다. 돈 때문에 불안해지면,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그런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삶에 대한 의욕과 자신감도 덩달아 실종된다. 이유 없이 마냥 우울해지고, 자기도 모르게 어리석은 짓을 골라서 하게 된다. 유물론을 주장한 마르크스는 실로 위대한 통찰력을 가진 학자였다. 물질적 기초, 즉 토대(base)가 법, 도덕, 예술, 종교 같은 이데올로기적이며 제도적인 상부구조를 규정한다. 다시 말해 돈이 인간과 사회를 결정한다. 성인이 된 후, 적지 않은 이들이 이루고 싶은 꿈과 현실을 놓고 갈등한다. 예를 들어, 소설가나 배우, 연주가 혹은 법조인이나 교수, 심지어 정치인이 되고 싶은데 생계가 걸림돌일 수 있다. 그런 경우,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으로 인해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합리적 판단을 하지 못해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있으며,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잔인한 진실이다. 돈이 아니라 꿈을 좇으라는 조언을 잘못 이해하면 안 된다. 고액연봉을 포기하고, 돈은 적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거나, 오랫동안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해오다 더 늦기 전에 꿈을 찾겠다며 진로를 전환하는 사람들은 사실 생계문제를 저버린 게 아니다. 물론 조앤 롤링처럼 취직을 포기하고, 과감한 도전으로 역전의 신화를 쓴 위인들의 살아 있는 전설도 얼마든지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논하기로 하고, 보다 일반적이고 현실적으로 돈 문제에 접근해보자. 


10억 연봉 유튜버가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책이라고 소개해 화제를 모은 책 <클루지>는 생계문제의 해결 없이 꿈을 이룬다는 게 왜 넌센스인지, 돈에 쪼들리면 어떻게 사람과 삶이 엉망이 되어가는지 꽤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스물셋의 나이로 MIT에서 뇌와 인지과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마음의 탄생>을 출간해 당시 학계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던 개리 마커스 뉴욕대 교수는 이 책에서 생각의 오류에 관해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한다. 


‘클루지(kluge)’는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완벽하지 않은 해결책을 뜻하는 공학자들 사이의 속어다. 저자는 인간의 마음이 훌륭한 완제품이 아닌, 기회가 되는대로 주변의 아무 재료나 자투리를 모아 만들어낸 허접스러운 조립품처럼 불완전하고 비합리적인 클루지 상태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명석한 두뇌를 자랑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몹시 어리석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여전히 우상숭배에 빠지기도 하고, 인생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약물에 중독되기도 한다. 기억은 허술하며,  자주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고,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도 TV를 보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다이어트를 결심하고도 아이스크림과 감자 칩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며, 담배가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의지 박약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정신질환도 흔하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에게 발견되는 모든 기이한 버릇이나 이상한 작용 뒤에는 진정으로 적응에 유익한 전략이 숨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즉, 다윈 진화이론의 핵심인 유기체의 어떤 특성이 진화한 까닭을 그 특성이 해당 유기체에 “어떤 적응적 이익을 가져다 주는가”에서 찾을 때 쓰이는 ‘자연선택’ 개념이다. 허술한 기억체계와 우상숭배, 박약한 의지 등 위에서 예로 든 인간 마음의 오류 뒤에 적응에 유익한 전략이 숨어 있을까?


마커스 교수는 최적화가 진화의 필연적 결과라는 주류 진화심리학자들의 가정에 도전장을 내민다. 그는 살아 있는 생명체는 끊임없이 생존하고 번식해야만 하므로 인간의 뇌는 최고의 선택이 아닌 현재의 생존을 최대한 추구하도록 설계돼 불완전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진화를 통해 최적의 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쾌락은 이상적인 적응의 산물이 아니다. 수억 년에 걸친 진화의 과정을 살펴보면, 주로 순간을 살아가는 생물들이 강력하게 선택되었고, 유기체는 미래보다 현재를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지나간 사건을 왜곡하고, 자주 물건을 잃어버리는 등 기억에 허점이 많은 이유는 인간이 컴퓨터로서가 아니라, 행위자로서 진화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거의 언제나 즉각적인 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살았다. 먹이를 찾고 위험을 피하는데 기억의 정확성보다는 속도가 훨씬 중요했다. 


저자는 인간의 ‘클루지스러움’은 무엇보다 ‘반사체계’와 ‘숙고체계’ 사이의 간격에서 나타난다고 말한다. 인간의 마음은 인간 선조로부터 오랜 기간 누적되어 진화해 자동으로 작동하는 여러 반사체계와 비교적 최근에 진화해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숙고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특히 위급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우선권을 쥐는 것은 주로 반사체계이며, 이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책의 이론을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동시대의 보통사람들에게 대입해보자. 우리의 마음은 맹목적인 진화의 과정이 남긴 고물이다. 미래보다 현재에 급급하며, 근시안적이고, 쾌락에 탐닉하고. 오늘 할 일을 내일, 모레로 마냥 미루고 살도록 설계돼있다. 특별히 못난 인간들만 그런 게 아니다. 충동구매로 경제적 곤란에 빠지는 일이 다반사고,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일에 집착해 현재를 망치며, 확증편향이 심하고, 가짜 뉴스에 곧잘 속아 넘어 갈만큼 합리적이지 못하다. 필요 없는 인터넷의 잡동사니 정보를 뒤지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일 또한 허다하다. 


안 그래도 약간 ‘모지리’ 상태로 태어난 우리는 위급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안 좋은 상황에서 바보 같은 심리가 더 강하게 작용해 개인의 의지만으로 쉽게 제어할 수 없다. 카드 빚이 쌓여가고, 당장 공과금을 내기도 벅찬 상황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하거나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건 불가능하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되고, 게임, 드라마, 인터넷 커뮤니티와 실시간 뉴스처럼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일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고, 안 그래도 없는 돈을 쇼핑중독에 빠져 탕진해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은 점점 망가져가고, 인생은 파탄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장 생계부터 해결하자. 현대 경제시스템에서는 누구나 조금만 머리를 굴리고, 노력하면 먹고 사는 문제는 충분히 해결이 가능하다. 안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꿈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가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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