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의 고통
“그때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성공에서 오는 중압감은 모든 것에 대해 덜 확신하는 초보자의 가벼운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창조적인 시기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애플에서 쫓겨난 경험은) 매우 쓴 약이었지만, 어떤 면에서 환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약이었습니다.” –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 대 졸업식 연설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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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용자가 삶의 표준인 고용사회에 사는 대다수 성인에게 직장은 밥줄이자, 사회적 위치, 관계, 그리고 행복과 정체성 같은 실존적인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가히 신적인 영역이다. 어떤 직장에 다니는가에 따라 자기 자신은 물론, 가족의 삶의 질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끔찍한 재난이다. 오죽하면 실직의 고통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나 이혼의 아픔과 맞먹는다고 할까? 그런데 평생직장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가 된 지금, 실직은 가장 보편적인 실패의 유형이 되어가고 있다.
심신이 지친 직장인들은 퇴사라는 꿈을 꾸게 되지만, 막상 퇴사를 당하고 나면,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에서 허우적거린다. 실직, 다른 말로 비자발적 실업자는 사회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루저’로 통한다. 세상으로부터 무능력자로 낙인 찍히며, 백수라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는다. 색안경을 끼고 대인관계가 원만치 못한 문제 있는 성격의 소유자일 거라고 보는 따가운 눈총도 견뎌야 한다. 낙오자로 보이기 싫어 자발적 퇴사자라고 둘러대는 이들도 적지 않다. 또, 알게 모르게 조직이라는 간판을 달고 누렸던 특권을 내려놓는 순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하찮음을 깨닫게 된다. 나와 친한 줄 알았던 주변사람들은 하나, 둘씩 멀어져 간다.
그래서 실직을 당하고 나면 많은 이들이 경제적인 타격은 기본이고, 분노와 좌절감에서 쉽게 헤어나오진 못한다. 무슨 죄인이라도 된 듯, 한없이 쪼그라들어서 숨어버리기 일쑤다. 인생이 끝난 것처럼 비관하며 자포자기하거나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위중한 병을 얻는 이들도 있다.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최악의 경우도 생긴다. 아직도 9시 뉴스데스크에서 봤던 충격적인 장면이 생생히 기억난다. 내가 처음 직장에 발을 들여놓았던 해, 외환위기 여진 속에서 대다수 직장인들이 공포와 혼란에 신음하던 시기로 돌아가보자. 유명 금융회사 간부가 인수합병으로 인한 대규모 인원감축에 반대시위를 하던 중 자사 직원들과 방송사 카메라가 지켜보는 앞에서 할복자살을 시도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생명이 위태롭다는 뉴스였다. 20대 직장새내기던 당시에는 물론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긴 하지만, 직장을 잃는다는 것이 삶의 의미를 빼앗는,극한의 절박함과 고통을 야기하는 사건이라는 데엔 충분히 공감한다.
이처럼 비극적이 결과를 초래하는 실직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살아남으려고 광적으로 발버둥치고, 영혼까지 팔아가며 비굴하게 버티는 사람들, 직장의 흔한 풍경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가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완전히 설명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불행을 이루는 원인은 너
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이다. 또, 세상에 나와 같은 어처구니 없고, 엄청난 아픔을 겪
은 사람이 있을까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원래 다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기 마련이다. 많은 부분
이 공개적으로 풀어놓기 민망한 매우 은밀하고 사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런 이유로 육지로부
터 뚝 떨어져 존재하는 외딴 섬처럼 고립상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밀려드는 고통스러운 상념에
매몰돼 빠져 나오기 힘들다.
무엇보다 부정적인 생각은 자기행동이나 일의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려 하지 않고, 무조건 남의 탓으로 돌리고 원망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