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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세화 Nov 15. 2019

사장은 아무나 하나 - 上

직장인 vs 자영업자 

열여섯 살 이후로 나는 다시는 낚시를 하지 못했다. 도대체 왜? 사는 게 그런 까닭이다. 우리네 인생에서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지 못한다. 늘 일만 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 농장 막일꾼이나 유대인 재단사도 늘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끊임없이 이런저런 백치 같은 짓만 하도록 내모는 악마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중요한 일 말고는 무엇이든 할 시간이 있는 것이다. 당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생각해보라. 그리고 당신이 살아오면서 그 일을 하기 위해 실제로 보낸 시간이 당신 인생에서 차지하는 몫을 계산해보라. 그리고 나서 면도하고, 버스로 여기저기 다니고 기차 환승역에서 기다리고, 지저분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신문 읽느라 보낸 시간을 생각해보라.
                                                                      - 조지 오웰 <숨쉬러 나가다> 중에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영업자 수는 약 563만명. 인구 10명 중 1꼴로 사장님인 셈이다. 이중에서 고용인 없는 1인 창업자가 70% 가량을 차지하고, 월평균 200만원 남짓 벌며, 세금도 내기 힘든 영세한 사장님이 대다수다. 그나마 소상공인 10명 가운데 6명이 영업기간 5년을 채우지 못하고 문을 닫는 게 엄연한 현실인데도 창업인구는 줄지 않고 있으니 희한한 일이다.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을 꿈꾸고, 과감히 불 속으로 뛰어드는 이들의 심정이 이해는 된다. 취업자 대비 자영업자 비율이 약 25%로, 미국(6.3%)의 4배, 독일(10.2%)과 일본(10.4%)의 2.5배 등 선진국 평균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사람들이 유난히 조직생활에 적응을 잘 못해서라거나 도전을 즐기는 사업가 정신이 강해서라고 여기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보다 지나치게 높은 자영업자의 비중은 견디기 힘든 조직문화, 심각한 고용불안 같은 열악한 고용환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직장생활에 심한 염증을 느끼고 더 늦게 전에 보다 인간답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보자는 마음에 창업을 시작하면, 대안 없이 설국열차에서 탈주하는 거나 다름 없다. 결과는 뻔하다. 


하지만 소규모 자영업자의 몰락은, 조지 오웰이 소설 <숨쉬러 나가다>에서 묘사했듯이, 하루 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할 수 있는 직장인처럼 갑작스럽고 명백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크고 작은 부침을 겪어가면서,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조금만 더 버티면 잘 될 것 같은 희망(혹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조금씩 서서히 무너져 간다. 그리고 결국엔 물질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재기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직장생활 12년 째 예기치 않게 구조조정의 희생자가 되었을 때, 이젠 정말 지긋지긋한 직장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타이밍이 왔다고 생각했다. 노예 12년. 그것으로 충분했다. 기자라는 직업에 나름대로 만족하며 일해왔지만 대부분의 직장인처럼, 생계를 위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무기한 보류하며 사는 소심한 월급쟁이였다. 기자는 야구선수로 치면 홈런이 아니라, 안타를 주로 날리는 사람이다. 기발한 기획력과 작문실력을 발휘하는 일은 드물고, 그런 쪽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 사실 시시각각 쏟아지는 각종 뉴스와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쓰는 것이 본업을 충실히 해내는 기자다. 기본적으로 글의 질보단 양이 훨씬 더 중요하다. 영혼 없는 기계적 글쓰기라 불러도 좋다. 따라서 문제의 본질을 파헤치고 싶어하거나, 창의적이고, 글을 너무 잘 쓰려고 하는 사람에겐 한계가 따르는 직업이다. 그렇다고 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미래가 보장된 안정적인 직업도 아니다. 개성을 버리고, 공장에서 찍어낸 과자처럼 남들과 똑같이 살아야 하는 직장인. 게다가 눈칫밥은 기본이고, 시기와 꼼수, 사내정치가 난무하는 직장생활은 한번도 순탄치 않았다. 무엇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만년 소설가 지망생으로 살다가 지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그럼에도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고 꾸역꾸역 붙어있게 만든 원인은 불안이었다. 생계걱정에서부터 패션쇼 참가나 공짜 밥과 술, 쓸모 없는 선물, 해외 출장 같은 기자나부랭이로서 누려오던 각종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에 대한 아쉬움, 일하며 맺어온 관계가 끊어지고 혼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가족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 이왕 빈털터리 백수신세가 된 김에, 더 이상 구차한 월급쟁이로 살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하지만 당장 걱정되는 것은 돈이었다. 십 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지만 여전히 돈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일하면서도 계속 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샐러리맨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회의감과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기자 10년차에 가진 거라곤 평생 쓰고 남을 만큼 풍족한 포스트잇과 볼펜, 메모지, 다이어리 같은 문구류와 사용법을 몰라 처박아둔 IT기기, 쓰잘데기 없는 장식품이 전부였다. 졸업 후 작은 벤처기업 몇 군데를 전전하다 꿈에 그리던 외국계 기업에 입사한 억척이 친구가 약간의 연봉인상에 인생이 달라진 것처럼 행복해하던 모습이 초라해 보인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월급쟁이로 사는 한 대부분 뾰족한 묘안이 없지 않은가? 약과 부스러기만한 월급을 쪼개 사는 팍팍한 생활, 일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치열한 밥그릇 싸움을 벌이고, 상사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끊임없이 해고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삶은 전쟁과 닮은 구석이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누군가의 목적을 위해 전쟁터에 나가 싸우다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간 젊은 병사를 떠올리며, 다시는 적성에 맞지 않는 직장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결연한 다짐을 했다. 당시 내가 느꼈던 내 상황과 심정은 조지 오웰의 장편소설 <숨쉬러 나가다>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지 못하고, 영혼 없는 일에 평생을 바치고, 일자리를 잃게 될까 불안에 떨며 자신을 팔기 위해 광적인 발버둥 쳐대는 중년의 보험회사 샐러리맨. 이런 삶에 싫증이 나기 시작한 그에게 어느 날 아내 모르게 17파운드가 생기고, 이 돈으로 1주일간 숨쉬러 나간다. 다만, ‘숨 쉴 곳’은 현대라는 이름의 괴물이 삼켜버렸음을 깨닫고 초라한 일탈을 마치는 주인공과 다른 결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구조조정 소식과 거의 동시에 헤드헌터로부터 굴지의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플랫폼의 편집장 자리 제안을 받았지만 단 이틀 만에 고사했다. 매력적인 연봉을 포기한 채 마케팅 대행사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탈고를 마친 소설을 수정하고, 또 매체창간에 대한 구상도 했다. 프리랜서로 한 일은 대기업 소셜미디어나 사보 콘텐츠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블로그 외에 다양한 소셜미디어가 확산되기 시작한 시기였고, 기업에서 기존 미디어에 의존하기보다 직접 미디어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해져 일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회사에 정직원으로 고용돼 일하지 않는 이상, 일자리의 질은 형편없이 낮다. 클라이언트에 종속돼 파리목숨처럼 이리저리 휘둘리는 대행사 소속 프리랜서 에디터는 정규직 잡지사 기자 때보다 벌이는 반토막 가까이 줄었고,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전화응대하고, 글 수정하고, 회의에 참석하고, 대행사 직원들이 못하는 일까지 떠맡아 해결해주다 보면 자유시간이 실종됐다. 가장 힘든 건 업무지식과 스킬이 턱없이 부족한 대행사직원들 그리고 클라이언트인 홍보실 혹은 마케팅 부서 직원들과 일하는 것이었다. 기획회의 하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고, 아주 쉬운 일도 시시콜콜 메신저나 전화로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일하다 보면, 그래도 나은 대행사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몇 군데와 일해보다 결국 부아가 치밀어 몇 달 만에 때려치우고 말았다. 책 쓰는 일도 여의치 않았다. 직장 다닐 때보다 시간적 여유가 더 없어지고,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 마음의 여유도 전혀 없었다. 그간 겪어왔던 출판사와의 악연도 한몫 했다. 아무튼 숨막히는 직장과 프리랜서의 처지에 지친 나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강해졌다. 자유롭게, 자아실현을 위해 일하며, 누구도 함부로 내 생계수단을 빼앗지 못하는,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 그리고 워킹푸어에서 벗어나 호사를 누리고 살기 위해선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디지털기술은 큰 자본 없이도 생산수단을 스스로 창출할 수 있게 해주니, 시대를 잘 타고났다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기도 했다.  


작가의 꿈은 또 잠시 보류하고, 오래 전부터 막연하게 구상해오던 연애 담론 매체를 창간했다. 사랑과 연애, 결혼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고찰해보고, 각계 전문가들이 재미있게 멘토링도 해주고, 데이트 코스와 데이트 맛집, 데이트 패션 코디법 등 싱글여성들의 관심사를 제공하는 매체. 잡종 기자로 10년 넘게 일해오면서 웬만한 분야는 안 다뤄본 게 없었던 나는 다양한 분야에 대해 나름대로 식견을 갖추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드는 수많은 동료들과 부대끼고, 사내정치에 꽝인 사람들이 그렇듯, 온갖 부당함을 견디느라 쓸데 없는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 없이 재미있고, 영향력 있는 미디어를 만든다는 것. 야바위꾼들의 훼방 없이 나의 재능과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벅차 올랐다. 단기간에 기존 미디어보다 더 영향력 있는 미디어회사로 성장시켜 나를 이렇게 만든 인간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고, 월급쟁이일 때보다 돈도 훨씬 많이 벌어서 전업작가로 살겠다고 생각했다. 출판사 편집자와의 트러블 없이, 내가 내고 싶은 책도 마음대로 출간할 수 있게 출판사도 같이 운영하고 싶었다. 30대의 마지막 일년을 극도의 불안과 분노의 감정과 싸워가며 독립적인 새 삶을 준비해갔다. 힘들었지만 잘 될 것 같았고, 그래서 뭔가 뿌듯하고 벅차 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울퉁불퉁한 자갈 밭길 같아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가면 내가 꿈꾸던 세계가 나올 거라고, 내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마흔을 앞둔 나이에 참 막연하고 허황된 꿈이었으며,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고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창업의 실패는 실직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참담하다.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말,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새겨 들어야 한다. 높은 청년 실업률과 은퇴 후 살아가야 할 세월이 길어지는 등의 이유로 창업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자질 있고, 준비된 창업가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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