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의 의미심장한 실험
창업이라는 지옥 같은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시급 아르바이트나 신분이 불안정한 저임금 계약직, 프리랜서가 반드시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정규직 샐러리맨도 다르지 않다. 열정을 불태울 만큼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라면 더없이 행운이지만, 보통 직장에서 그런 일을 찾기는 쉽지 않고, 그럭저럭 할만한 일이라도 별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사업은 다른 얘기다. 내 삶의 주인이 된다는 건 낭만적인 일만은 아니다. 일의 A부터 Z까지 모든 걸 내 손으로 시작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는 창업 후 일주일에 90시간 이상 일했고, 빌 게이츠도 일주일에 4일 이상 사무실에서 잠을 잘 만큼 극한의 업무량을 소화해냈다. 게다가 첫 발을 내디딘 창업인에게 제대로 보상이 주어지긴 어렵다.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땡전 한푼 받지 못하는 무보수 사장이거나 인건비로 따지면 최저시급도 못 받는 사장들이 허다하다. 성과가 날 때까지 자본과 노동을 계속 쏟아 부어야 한다.
운 좋게 처음부터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과도한 업무량과 그밖에 처음 사업을 시작한 오너가 짊어져야 할 무게는 견디기 힘든 것이다. 백종원 대표의 창업 스토리를 한번 보자. 미식가 집안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요리에 관심과 재능을 보인 그는 연세대 재학 당시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호프집을 한 달 만에 인수했고, 3학년 때까지 가게 3개를 인수해 15억원의 자산을 가질 만큼 발군의 사업수완을 발휘했다. 그런데 생뚱맞게도 졸업 후 인테리어 사업에 뛰어들었다. 파리만 잡고 있던 어느 날, 심심해서 아는 부동산에 놀러 갔다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한마디가 불씨가 돼 적자에 허덕이던 쌈밥집을 얼떨결에 인수하게 된다. 여기서도 한국 최초로 대패삼겹살 개발하는 등 백 대표 특유의 외식사업에 대한 감각으로 대박을 터뜨린다.
식당주인으로 한참 재미를 보고 있을 때, 그는 돌연 건축사업에 뛰어들었다. 잘 나가는 식당을 내팽개치고, 또다시 의외의 업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반말하고, 물건을 던지며 시비 거는 무례한 손님, 외제차 몰고 여자친구랑 와서 테이블이 더럽다며, 거들먹거리는 나이 어린 손님, 술 먹고 난동을 부리거나 물건을 던지고, 반말하고, 다짜고짜 환불해달라고 떼를 쓰는 등 온갖 진상 손님들. 이런 손님들 때문에 아침마다 출근하는 게 두려울 정도로 싫었고 털어놓았다. 건축사업은 외환위기로 인해 17억의 빚만 남겼고, 다시 식당주인으로 복귀한 그는 외식사업에 매진한 끝에 19개의 프랜차이즈를 가진 업계 대부로 성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고, 재능 있는 분야라 할지라도, 심지어 처음부터 승승장구를 하더라도 초기사업자가 감내하기 힘든 역경이 있다는 현실을 엿볼 수 있다.
더군다나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스타트업의 실패율은 매우 높다.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몇 년 안에 거의 다 망한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사업을 시작할 땐 나의 모든 것이 탈탈 털려도 좋을 만큼, 열정이 있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은 스티브 잡스가 그토록 강조했던 얘기이기도 하다. 잡스는 “성공적인 기업가와 그렇지 못한 기업가를 가리는 기준의 절반은 인내심”이라고 했다. 사업은 부단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며, 정말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장애물이 나타날 때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업을 한다고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게 되는 건 아니다. 사업을 돈을 많이 벌거나 생산수단을 소유함으로써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목적으로 하다간 낭패보기십상이다. 사업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남의 밑에서 일하기 싫어서, 취직이 힘들어서, 복수를 위해, 혹은 남에게 과시하고 싶어 사장을 하는 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평생직장시대가 저물고 창업이 대세가 되고 있지만, 그런 시류에 무임승차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요즘엔 월급도 적고, 적성에도 안 맞고, 굴욕적으로 버텨야 하는 직장 대신 나에게 맞는 일, 곧 창업을 하자라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나는 가장 중요한 창업가 정신으로 강한 주인의식을 꼽고 싶다. 주인정신이 강한 사람은 목표가 뚜렷해서 웬만
한 일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를 통제할 줄 안다. 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아 붓는다. 그리고 결과가 좋든, 나쁘든 그에 대해 기꺼이 책임진다. 노예로 살기 싫다며 창업을 하지만, 무한한 자유가 주어졌을 때 시간관리와 자기절제가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창업은 본인의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욕심 많은 CEO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게 뭔지 해결해주려는 의지와 타인(특히 직원들)에 대한 희생정신이 강한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다. 멋진 자동차와 명품 옷과 가방, 고급 주택, 값비싼 음식과 술 등 사치욕구가 강한 사람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게 바로 창업이다. 자선사업이나 사회적 기업 CEO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거창하게 표현하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욕구가 강한 사람만이 정글 같은 비즈니스세계에서 롱런(long-run;장기간 흥행하는)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소비본능과 생산본능, 사욕과 공익추구가 균형 있게 공존하긴 어렵다.
그런데 내가 사업에 적합한 사람인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하기는 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식당을 차린다고 가정해보자. 진상손님들은 반드시 나타나게 마련인데, 막상 실제에 부딪히기 전까지 내가 그런 손님들을 참아낼 수 있을지 없을지 알기는 힘들지 않은가? 머릿속으로 자신이 의지력이 강하다거나 자기주도적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 그런 것과도 차이가 날 수 있다.
"창업하고 망하면 어떡하지?"
그는 물욕이 없는 편이었지만, 진정으로 세속적인 욕심을 버릴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한계치를 실험해보기로 한다. 대형마트에서 냉동 핫도그와 냉동과일을 사와서 한달 동안 이 음식을 하루 1달러치씩만 먹는 것이었다. 한 달이 지나자 그는 일하는 즐거움이 먹는 즐거움을 뛰어넘었다는 걸 알았고, 컴퓨터 한 대와 한 달 30달러만 있으면 평생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창업해도 한 달에 30달러는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이를 계기로 머스크는 창업에 더 집중할 수 있겠다는 믿음을 얻었다. 그리고는 창업에 뛰어들었다. .
사업을 하면서도 그는 돈을 위한 선택은 거의 하지 않았다. 첫 사업이었던 온라인출판 소프트웨어 Zip2에서도 지분이 7% 밖에 되지 않는 열악한 조건으로 끌어내리면서도 투자를 받아 회사를 키웠고, 페이팔로 3천 억 원을 번 뒤에도 거의 모든 돈을 우주사업과 전기차 사업에 재투자했다.
일을 하다 보면, 숨막히는 감옥 같은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은 순간이 온다. 뭘 위해서 몸이 곤죽이 되도록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지, 계속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며 인생을 허비하게 되는 건 아닌지,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것인지 강한 회의감이 든다. 힘든 인간관계, 실직에 대한 불안감, 빡빡한 월급, 그리고 샐러리맨으로서의 나를 얽매고 있는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래서 숨쉬러 찾아간 곳이 창업의 세계라면 모든 것을 잃고 후회하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