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과정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공상 모음집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 교환학생 6일차.
하루에 한 끼 먹고 싶은 걸 먹는 건 장기적으로 보면 꽤 돈이 나가는 일이다.
그러나 외지 생활에서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음식이기에 다른 돈을 아끼더라도 조금 비싼 음식을 먹게 된다. 푸드코트 식인 이곳의 학식당은 한식도 팔고 있기에 당기는 음식이 있다고 해서 굳이 밖에 나갈 필요도 없다. 한국에서 외식할 때는 손이 잘 안 갔던 한식이 여기서는 나를 위한 선물이다.
개강 날인 오늘의 첫 수업은 열대 생태학이었다. 대부분이 교환학생들.
첫날은 어떤 대학이 그렇듯 오리엔테이션이었다. 수업의 절반은 야외 학습이고, 조별 과제와 개인 과제를 동시에 진행해야하며, 프로그래밍 툴도 배우지만 시험은 없는 형태의 수업이었다.
방에 돌아와서는 쓰고 싶은 소설의 내용을 정리했다.
쓰고 싶은 소설의 장르는 로맨스였다. 원래 낯선 곳=낯선 인연이 로맨스의 공식 중 하나가 아닌가.
낯선 사람은 같은 수업 듣는 학생이라도 일단 경계하고 보는 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이야기지만.
[잘 도착했어?]
[응. 지금 기숙사 가는 중이야.]
1월 초였지만, 싱가포르의 학기는 이미 시작 직전이었다. 짐을 너무 많이 챙겨온 걸 후회하며, 한 손으로는 휴대전화를 든 채 허리까지 오는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기숙사 앞 경사진 길을 겨우겨우 내려갔다. 평소에 쓰던 도구가 아니면 그림이 안 그려진다며 한국에서부터 바리바리 싸 들고 온 까닭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꽁꽁 싸매고 겨울을 보냈는데 갑자기 여름 날씨를 겪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소설의 첫 부분은 내가 이 기숙사에 막 도착했을 때의 심경을 담았다. 어떤 처지에 있는 인물이라도 기숙사에 첫 발을 내딛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작품의 주인공은 미대생으로 설정했다. 졸업 직전이 되어서도 뭘 할지 모르겠어 도피성으로 교환학생을 온 학생으로. 실제로 교환학생은 잠깐 일상에 벗어나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기 좋은 시간이다.
* 교환학생 7일차.
꽤나 즉흥적인 하루였다. 더위에 적응하고 나니 들뜬 마음이 밀려온다. 한 수업에서는 내게 말을 걸어온 다른 교환학생들과 말을 같이 밥을 먹었다.
학식당에 유명한 와플 코너가 있다고 해서 먹어봤는데, 초코 시럽을 넣은 와플은 처음에는 맛있었는데 나중 가니 너무 질려서 다른 와플을 다음에는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한국인 학생들과 무작정 근처 역으로 나가 맥주 한 잔을 했다. 오랜만에 마신 술이 맛있어서인지, 피곤해서였는지, 아니면 술은 한국과 다를게 없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서였는지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노래가 나왔다.
주롱 이스트 근처에 있는 야시장을 들렀는데, 이곳을 배경으로 두 주인공의 첫만남을 써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주롱 이스트 역을 나오자 꽤 커 보이는 쇼핑몰과 역 근처 위치한 야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야시장도 한 번 들러볼까, 하는 생각에 한나는 지갑을 넣은 가방을 꼭 붙잡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 낯선 음식들과 영어로 적혀 있음에도 생소한 느낌의 단어들에 쨍한 노란빛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역 주변이어서 길을 잃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낯선 환경에 떨어지자 집 근처 시장보다도 작은 야시장이 너무나 복잡하게 느껴졌다.
막막한 마음에 한나는 어디로 발을 내딛지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도움을 누구에게, 어떻게 처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느낌. 누군가가 어깨를 건드리자, 한나는 순간 움찔하며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길 잃으신 거면 도와드릴까요?”
싱가포르에서 오래 산 것 같은, 현지인과 비슷한 차림인데도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이목구비가 그가 한국인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국인이세요?”
“네. 그쪽도 한국인이시죠? 곤란해하는 것 같길래.”
타지에서 같은 나라 사람을, 그것도 이곳을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만나는 건 반가운 일이었다. 그러나 혹시나 수상한 사람은 아닐까 의심이 가는 건 여기 온 지 얼마 안 된 한나에게는 어쩔 수 없이 드는 생각이었다.
뭐, 굳이 표현하자면 이런 식으로 말이다. 주인공 이름은 한나로 정했다. 적당히 예쁘면서도 어딘가 있을 것 같은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