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교환학생 작문일지 -3-

소설의 하이라이트로 나올 법한 곳을 너무 일찍 만났다.

by MSJ

교환학생 12일차


일요일이라 성당을 다녀왔다. 다음 주는 설날이기에 미사가 없다고 하는데, 설날에 오히려 미사를 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미사가 끝나고 주롱 포인트에서 먹은 완탕면이라는 이름의 국수는 갈색 소스에 비벼진 비빔면과 완탕국이 나오는 메뉴였다. 생각보다 괜찮은 맛과 가격이었다.

해가 지기 직전, 붉어지려 하는 하늘이 예뻐 사진을 찍었다.

이 부분도 소설에 넣어볼까. 이런 예쁜 풍경을 보며 방금의 만남을 다시 기억해내는 것도 로맨스의 장면으로서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제 이름은 배산이에요."
이름은 다시 만날 사이에나 알려주는 것이었다.
한나는 만난 지 두 번 밖에 되지 않은 그에게 연락처를 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해야 할지, 처음에 주지 않은 것을 아쉬워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루의 막이 끝났다며 붉은 커튼이 땅 위로 내려앉았다. 한나는 휴대전화를 들어 하늘의 사진을 찍었다.
찰칵, 소리가 들리는 순간. 알림음과 함께 화면 위에 방금까지 생각하던 이름이 띄워졌다.
[다음 주 주말에 시간 괜찮아요?]

상대를 떠올리는 순간 그 상대도 나를 떠올리고 있다는 걸 깨닫는 장면. 그런 장면이라면 꽤 설레지 않을까.



교환학생 13일차


오늘은 열대생태학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오전에는 근처 숲으로 탐사를 갔다. 중국인 친구를 만났는데, 한국 문화, 특히 드라마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 것 같았지만 일단 내가 드라마를 안 보다 보니 묘하게 말이 통할 듯 통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밖에만 나오면 기가 빨려 혼자 다니는 것도 벅찬 성격이다 보니 교수님 설명 들으며 기록하는 데에만 열중했던 것 같다.

교수님은 식물이 얼마나 밀집되어 있고 그것이 어떻게 구역화되어 있는지 판단해보라며 안내해주셨다. 입장하는 길에 처음 보는 누군가를 만났는데, 이곳의 식물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어서 우리를 따라다니며 식물 이름들을 알려주셨다.

숲에서 나오는 길에는 우리나라 DMZ의 생태계를 이야기하고 있는 다른 교환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득 나를 보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는지 자신이 그 근처에 갔던 이야기를 하는데, 솔직히 DMZ 생태계보다는 DMZ라는 구역의 위험성에 더 초점을 두고 말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교수님이 해주신 설명은 어떤 나무의 가시는 원주민들이 독침으로 사용했다는 등 생물 자체의 특징뿐만 아니라 식물이 ‘어떻게’ 사용되었는가에 초점이 맞춰진 내용이 많았다. 교환학생을 지원할 때, 나는 이곳에서는 생명과학과와 생명공학과를 분리해놓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이 대학이 공대라 그런 건지는 몰라도, 이곳의 생명과학과는 과학과 공학의 개념이 뚜렷하게 분리되지 않는 느낌이다.

기록이란 건 좋은 거다. 바로 전에 쓴 어제의 일기를 보고 나서야 어제가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말이다. 아마 나중에 교환학생 후기를 적으라 하면 분명 이상한 것만 적어뒀겠지.

맞다. 나중에 이렇게 작성한 내용을 정리해서 여행을 갈 때마다 떠올렸던 소설과 오버랩해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간은 무리라도 온라인 업로드 정도는 가능하겠지.


수업 이후로는 많은 시간을 기숙사에 있었는데도 일찍 일어나 점심도, 저녁도 맛있는 걸 먹어서인지 별로 하루를 버렸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점심은 비빔밥에 저녁은 파스타라니. 토마토 소스에 베이컨과 양파, 올리브를 넣어달라고 했는데 떠올려 보니 아버지가 예전부터 해주시던 스파게티 조합이었다. 먹어보고 역시 이 조합은 나에게 있어서는 실패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도 집이 그리우면 이렇게 먹어야지.


교환학생 14일차


아침에는 바이오이미징 수업이 있었다. 어제 본 중국인 친구도 같은 수업을 듣는다는 걸 오늘 알았다.

사실 오늘은 수업보다는 저녁 약속이 더 기억에 남았다. 다운타운 쪽에는 거리 전체에 천장이 달린 곳이 있다. 클라키라고 했던 것 같은데. 천장도, 천장 아래의 풍경도 다채롭게 빛나는 게 인상적이었다.



내일은 해외 대학들이 난양공대 학생들에게 자기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오라고 홍보하는 부스 행사가 있다. 우리 학교에서는 세 명만 난양공대로 왔기 때문에 세 명 모두 우리 학교의 국제협력본부 직원분들을 행사에서 돕기로 했다. 그 일 때문에 고맙다며 세 명 모두를 불러내 저녁을 사주신 거다.

소고기로 만든 메뉴가 CNN에서 선정한 맛있는 음식 1위였다는데, 로즈마리 비슷한 허브향과 코코넛 향이 강한, 살짝 매운 갈비찜 느낌으로 맛이 특이한 거에 비교해 맛있다는 느낌이 강하긴 했다. 그 외에도 나시고랭이나 돼지 배 부위 고기 등 다양한 음식을 시켜 먹었는데, 학식만 먹다가 이런 음식을 먹으니 혀랑 위가 호강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식당 내부 사진과 그때 먹었던 음식들. 가운데 사진의 왼쪽 음식이 비프 렌당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오른쪽 사진의 꼬치구이도 꽤 맛있었다.


직원분들이랑 헤어진 후에는 홋카이도 아이스크림 녹차 맛을 먹으며 야경을 한참 바라보았다. 강을 따라 조명으로 장식된 작은 유람선이 지나가고, 어둡고 흐린 강 위로 거리에서 빛만을 빼 풀어놓은 듯 몽환적인 풍경. 수채화로 그려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을 찍어 보았지만 시야만큼 좋은 카메라는 없는 것 같다. 그랬기에 최대한 머릿속에 풍경을 담으려 노력했다. 소설의 초반에 담기에는 너무 아까운 장면이었다. 후반부의 클라이막스 즈음에 들어가면 딱 좋을 듯한 장면.

물에 가라앉은 조명빛이 예뻐서 그런지, 같이 온 사람들 전부 강가에 앉은 채로 한참 이 풍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영문 모르게 나오는 수다를 떨며 무의식적으로 걷자 어느새 마리나 베이 근처에 도달해 있었다. 목적지 없이 걷다 보니 샌 것 같았다. 마침 저번에 봤던 라이트쇼가 열리고 있었다.(싱가포르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인데, 나중에 소설에 나오기 좋은 타이밍에서 번외로 풀 예정이다.) 라이트 쇼를 가까이에서 보았던 저번과 달리 이번에는 건물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반대편에서 볼 수 있었다. 가까이서는 몰랐는데, 건물 전체가 음악과 빛에 맞추어 변하고 있었다.

거리에 따라 같은 쇼가 이렇게 달라지다니. 내일은 학교 소개 부스에 가야 하는 날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빨래 널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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