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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 율 Feb 18. 2022

연습하다가

일상. 생각. (1)

한국으로 귀국한지 1년 반 정도 되었다.


코로나로 세상이 멈춰져있었을때, 모든 스케줄이 다 취소가 되고, 우주에 붕~ 떠다니고 있는것 같은 시간을 보내다가, 귀국을 결정했다.


그 이후로 오늘까지.

시간이 정신없이 흘렀다.


12년 반의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와서는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했다.


헤어짐과 만남이 있었고, 가르칠때 언어가 편해진것과, 대학에서 학부, 석사, 박사 학생들을 가르치는것, 연주활동을 하는것,


다 내가 원하던 것들을 할 수 있었다.


가족이 있고, 친구들이 있다.


사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는데, 나는 해답을 모른채 살아가고있다. 아니 어쩌면 나는 해답을 이미 알고있는가?


정확히는 박사 4년차 때 Final Recital 두개를 끝내고 난 후였는데, 그 이후로 나는 혼란스러웠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내가,

일어나서 연습실을 향하고 있지 않은 내가,

오늘은 뭘해야되지? 하며 방황하는 내가,

뭐부터 시작해야되지? 하며 갈피를 못잡고 있는 내가,


나는 낯설었다.


왜 일까?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벗어나, 나에게 늘 영감과 용기를 주시던 교수님들과의 interaction이 없어서 였던것 같기도 하고,


학교가면 늘 만나던 친구들이, 학교를 안다니게 되면서, 없어져버려서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타운을 떠나거나, 결혼을 하거나) 그런것 같기도 하고,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다가, 갑자기 스케줄이 없는, deadline이 없어진 삶을 살아가는게, 나는 혼란스러웠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죄책감이 들었고, 해야될 일을 안하고 있는것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인지, 힘들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새로운 나의 삶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게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계속 피아노를 치며, 좋은 연주로 관객들과 소통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생들의 성장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었다.


선생님으로서의 나는 괜찮았다. 졸업한 학교가 직장이 되었고, 학생도 많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이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피아니스트로의 나는,

규칙적인 연습과 레슨없이, 독주회를 하는게 사실 힘들었다.


박사 졸업연주를 나름 성공적(?)으로 끝내고, 나는 평생 그렇게 새로운 레파토리를 익히며, 더 나은 연주를 하며 살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나보다.


연주 준비할때 얼마나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잊어버리고...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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