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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정 Oct 19. 2017

계집애가 대학은 무슨 대학이야?

어쩌면 21세기 언젠가 다시 듣게 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내가 강의를 듣는 이대의 한 강의실에서 출발해서 내가 자주 가는 신촌의 한 카페까지는 약 15분이 걸린다. 보통은 마지막 강의를 듣고 감명 깊었던 내용을 잠깐 복기하거나, 궁금한 점을 마음에 새기면서 학교를 나선다. 그렇지만 이 15분 동안 계속 그 생각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어느 날은 하늘이 예뻐서, 어느 날은 너무 추워서, 어느 날은 핸드폰 속에 너무 재밌는 것들이 많아서 그렇다. 그렇게 많은 질문과 고민들을 길 바닥에 버리면서 걸어온 날들이 쌓이다 보면, 또 어느 날은 이 생각과 고민이 나를 끈기 있게 따라와 주는 날이 있다. 그렇게 나의 생각과 마주 앉아 자리를 잡으면 나는 다시 고민한다. 이 생각을 바로 풀어낼까, 아님 키워드만 적어놓고 다음에 다시 글을 쓸까. 누구나 예상하듯이 보통은 후자다. 그렇게 내 앞에 앉아 있던 생각이라는 친구는 다시 내 공책 속에서 잠든다. 그러다가 이렇게 더는 미룰 수 없이, 꼭 쓰고 싶은 녀석을 만나기도 한다.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글로 돈을 벌기는 커녕, 그냥 글을 재미있게도 쓸 줄 몰라서 읽어주는 사람도 몇 없다. 당장에 내가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학생이란 신분에서 해야할 일들은 매일 쏟아지고 내 시간은 항상 부족한 것을 감안하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투여한 노동 대비 지나치게 낮은 수익을 준다. 보통은 마이너스 수익률. 그런데 이런 음의 수익률을 극복할 만큼의 감정적 효용을 주는 글은 브런치에 함께한다. 보통은 나를 돌아보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거나,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의 현상들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들이 나에게 엄청난 감정적 효용을 주는 글이다. 그래서, 오늘은 나의 고민을 적어보려고 한다.




오늘은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의 저자인 천주희 연구원님의 특강이 있었다. 여성학 강의였다. 강의는 학생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서 학자금 대출을 받고 있는 상황, 사회에 진출해 진정한 경제활동을 해 보기도 전부터 빚에 내몰리는 상황을 문제로 삼아 연구한 석사학위 논문에 관한 것이었다. 여성학 수업이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이 특강에서 여성의 상황에 집중했다. 여성이 처한 상황이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여성인 학생은 교육이나, 그에 따른 금전적인 상황에서 남성 학생들보다 더욱 독립적인 상황을 보인다. 둘째, 정규직 여성의 평균임금은 30대에 최고치를 찍고 40대부터 감소하기 시작하는 반면, 정규직 남성의 평균임금은 50대까지 증가하다가 60대에 이르러 감소한다. 그런데 이 평균치는 전 연령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있고, 심지어는 감소한 60대의 평균임금은 여성이 최고치를 찍는 30대에 받은 임금보다도 훨씬 많다. 사실, 나는 통계자료를 볼 때 평균치를 비교하는 것을 그다지 선호하진 않는다. 당연히 평균치가 보여주지 못하는 맹점이 있음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맹점을 차치하더라도,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문제 상황이다.




정규직 여성의 평균 임금이 감소하는 30대와 40대 사이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나는 가장 큰 이유를 결혼과 출산, 육아에서 찾는다. 사실은 출산과 육아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오늘날은 단순히 결혼을 이유로 경력을 단절하는 여성의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결혼 이후 아이가 생기면 출산을 하게 되는데 여성의 신체적 특성 상 장기의 휴직이 필요하다. 이 이후로 만약 엄마가 신생아기 아이와 더 많은 애착을 형성했기 때문에, 혹은 다른 누군가(그 누군가가 설령 아빠라고 하더라도)에게 맡기는 것이 불안하기 때문에 등등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이유들 때문에 여성이 경제활동에서 더욱 빨리, 그리고 쉽게 단절된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당연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전혀 당연하지 않은 상황이다.




내가 이를 당연하지 않다고 여기는 데에는, 우리 사회가 현재의 저출산을 중대한 문제로 보도하고, 국가적 위기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식의 협박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성애적 사랑을 바탕으로 한 여자와 남자가 결혼을 하여 가정을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이 부부가 자신의 후손을 남길 것인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두 사람의 의견과 선택으로 이루어질 일이다. 적어도 자본주의적 시각에 의하면 사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경제적으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들이 가족으로서의 소속감을 두텁게하고 서로에 대한 책임감을 강화하며, 새로운 생명에 대한 존귀함을 인정하고, 인간적 본능의 결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아이를 기르고 안정적이고 단란한 가정 생활들 통해서 얻는 감정적인 효용이 단순히 경제적 손실보다 많다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부부의 선택에 의한 결정이 되어야 할 출산의 문제를, 사회가 자신 스스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면서 해주는 것도 없이 (사실 있긴 하지만, 아주 작은 보상으로) 아이를 낳으라고 한다. 출산이 애국이라면서, 비출산은 사회에 해악을 주는 행동인 양 포장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미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꽤나 깊이 박혀있다. 의사결정 시에 생각보다 많이 시장경제의 논리를 가져다 쓴다. 당장에 우리가 취업하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곳이 어디인가. 기업은 전적으로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성장한 하나의 집단이고, 이들의 운영은 이윤 극대화다. 당연히 투자 대비 높은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 기업으로서는 옳은 선택이다. 전통적인 경제학적 논리로 설명하기 힘든 점이 하나 있다면, 그렇게까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 꽤나 단기의 이익에 눈이 멀 수 있다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와 가까운 취업시장을 보더라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특수한 몇몇 기업을 제외하곤, 여성노동자는 남성노동자에 비해 선호되지 않는다. 일례로, 여성 지원자에게 결혼은 언제 쯤 할 생각인지, 혹은 아이는 낳을 것인지 등을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물어보는 경우가 여성노동자에 대한 비선호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 여성이 현재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결혼을 하고, 30대 초반에서 중반 즈음에 아이를 낳는다면 짧게는 휴직부터 길게는 퇴사까지 경제활동의 휴식이 필요하다. 30대와 40대 사이, 여성노동자의 경력이 단절되는 가장 큰 이유는 출산과 육아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단절되면 여성 스스로에게 어떤 문제가 나타날까. 자아 실현의 기회 박탈이라던지, 무급 가사노동은 고려하지 않더라도 나를 위해 투자한 교육비에 대한 회수도 어려워진다. 회수를 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빚을 내어 학교를 마쳤는데 일찍이 경력이 단절된다면? 그런 경력 단절이 온전히 개인 스스로의 판단하에 내려진 선택이 아니라, 사회의 입김이 작용했다면? 앞으로 극복해 나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내가 빚을 내어 학교를 졸업했고, 고학력자로서 꽤나 많은 지식을 지닌 질 좋은 노동자인데도 빚마저 갚지 못하고 경제 활동을 끝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면?




결국 이러한 불안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을 제거할 수 없다면, 다시 이 성차별은 더 낮은 나이로 더 넓은 간극을 보이며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여성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많다. 가방끈이 짧은 내가 차마 생각하지 못한 방법들이 많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나는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단절시키지 말아달라고 주장할 뿐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활동하는 주체가 판을 치는 와중에, 국가만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굳이 경제적 메리트가 없는 출산을 개인에게 강요한다. 특히 여성에게. 자신에게 투자한 비용을 회수할 수도 없을 만큼 빈약한 보상을 딴에는 보상이라고 제시하면서 말이다. 이 보상이나 제도 없는 강요, 특히 도덕적인 자극, 애국을 앞장세운 자극은 도대체 이 사회를 어떻게 진보시킬것인지 의문을 들게 한다. 퇴보하지 않는 것만 하더라도 감사해야 할 지경이 아닌가.




나는 또 한 명의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앞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며, 어떤 선택이 합리적일지 수없이 고민하겠다고 다짐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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