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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정 Dec 10. 2017

비우지 않을 용기

   나의 낭낭한 반항심은 주로 서점에서 최고치를 찍는다. 특히 자기계발서 코너 앞에서. 편식은 좋지 않지만, '~ 해라' 류의 책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 코너에 가더라도 '떠나야만 하는 이유', '떠나라' 등의 책은 손이 가지 않는다. 요새는 비단 자기계발과 여행 코너뿐만 아니더라도 여러 분야에서 생활 패턴을 제안한다. 제안으로 가득 찬 코너들을 돌다 보면 누군가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은 압박감을 받을 때도 있다. 이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이렇게 살지 않으면 정신병에 걸릴 것처럼 나를 정형화된 틀에 가두려고 하는 느낌이 든다. 물론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사를 앞두고 있는 나는 내 방에서 빼내기를 하고 있다. 안 입는 옷을 버리고, 안 보는 책을 버리고, 필요 없는 가구는 다 두고 갈 예정이다. 새로 생기는 내 방에는 침대 하나, 협탁 하나만 놓고 살기로 했다. 단순하고 심플한 집기만 가지고 살기로 한 것이다. 세상의 트렌드도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며 얽매이지 않는 삶을 향한다. 트렌드에 발맞출 만큼 유행에 민감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의도는 이해할 만큼의 사람은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또 문득 반항심이 고개를 들었다. (반)항심이는 항상 불쑥불쑥 손을 들고 질문을 남긴다. 심플하게 산다는 건 뭘까? 얼만큼 덜어 내야 심플하고 단순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럼 얼만큼 가지고 있어야 물건과 짐에 얽매이는 사람인 걸까? 소유한다는 것은 나를 피곤하게만 하는 걸까? 따위의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뒤집어 놨다. 이때다 싶은 나는 시험기간에 제일 재밌다는 딴생각 하기를 했다.


   

     사실 단순하게 산다는 것은 비단 집기나 가구의 수에만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건을 줄인다는 것은 단순이 눈에 보이는 그 물건의 숫자가 중요하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방에 무엇을 두고 살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내년에 내가 가게 될 PCT가 생각이 났다. 의식주를 모두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PCT 하이커는 배낭 한 개에 모든 것을 담는다. 특수한 상황이니만큼 gps가 달린 시계를 차기도 하고, 물을 정수하는 필터와 수낭을 챙기고, 등산용 스틱과 얼음 산을 대비한 아이젠 같은 것을 챙긴다. 이것은 산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다. (일상과 비교할 때 추가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이들만큼 단순하고 심플하게 사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길을 걷고, 밥을 먹고, 다시 길을 걷고, 밥을 먹고, 다시 길을 걷다가 자리를 잡고 다시 밥을 먹고 자고 일어나는 것. 짐도 많이도 필요 없다. 심지어는 배낭 한 개로 시작하는 여행인데도 그 배낭 안에서 버릴 게 나온다.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개념이 어쩌면 더 강해지고, 어쩌면 의미를 잃기도 한다.



    산속에서 먹고 자는 이들에게도 몇 가지 안 되는 집기만 있으면 되는데 일상생활에서는 더 적게 필요하지 않을까. 심지어 정보화 시대에서 핸드폰이나 컴퓨터만 있다면 다른 건 거의 필요가 없다 하여도 무방할 정도다. 책이든, 음악 CD든 모두 데이터화 해서 이용할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플러스알파'의 것을 소유한다. 누군가는 이것을 덜어내야 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걸 삶의 질, 혹은 만족감으로 표현하고 싶다. 줄이려면 줄일 수 있다. 버리려면 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실체'로 소유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만족감과 위안,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 핸드폰 속 음악 어플이면 세상의 모든 노래를 찾아서 들을 수 있고, 공간 차지도 잘 안 하지만, 오히려 LP판은 더욱더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것에 매달리는 멍청한 짓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실체가 가진 안정감과, 그 안정감으로부터 오는 마음의 평안. 반드시 비우는 것만이 좋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늘도 나는 어떤 방을 꾸밀지 고민을 거듭한다. 다 버린다고는 했지만, 고등학교 시절 수험서, 열심히 공부했던 행정고시 수험서들은 버리지 못했다. 나의 노력의 실체들이니까. 이것들은 누군가가 보기엔 쓰레기지만, 내가 보기엔 나의 존재를 인정받도록 해주는 어떠한 한 수단이다. 반드시 비우는 것 만이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가 생각할 때, 비우지 않음으로써 스스로에게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물건들은 한 번 끝까지 남겨보는 것도 삶의 질을 향상한다고 생각한다. 진짜로 살면서 필요 없는 것을 다 버린다고 한다면 PCT를 걷는 사람들의 배낭만큼, 혹은 그보다 적게 가지고 살아야 할 텐데 그런 삶이 정말 단순하다고 행복할까. 산에서야 단순하고 행복하지만, 일과 사람들에게 치이며 하루를 살아내는 일상에서도 그렇게 모든 것이 사라진 단순한 삶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의 정답일까? 언제나 항상 비워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필요할 때 채워나갈 줄 아는 것 또한 용기이고, 멋진 삶을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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