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소정 Jul 29. 2017

소정아 괜찮아,

도움 좀 받으면서 살아도 돼.



    여행하면서 스스로도 제일 많이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동행들과도 제일 많이 이야기하고 혼나고 싸우고 했던 주제가 바로 '도움'이었다. 넓게 보자면 배려 또한 그랬다. 정확히는 '나를 향한 도움'과 '나를 향한 배려'. 나는 어릴 때부터 내가 해주면 해줬지 받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내가 빌려준 것은 못 받아도 괜찮으면서, 내가 빌린 것은 죽어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내가 더 마음을 쓰는 것은 괜찮지만, 상대방이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어 주고, 배려해 주는 상황이 나는 너무나도 불편했다. 나 때문에 상대방이 불편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생을 스스로에게 각박하게 살아왔던 내가,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것은 나로서는 마음의 부담이 컸다. 내가 너무나도 짐이 되는 것 같아서 그 사건이 있은 후부터 꽤 오랫동안 괴로워했고, 날마다 술을 마시는 날이 되면 펑펑 울면서(이제와 생각하면 도움받은 것보다 술 마시고 우는 게 더 민폐였는데 말이다) 힘들어했다.  그럴 때마다 동행인 언니가 항상 위로의 말을 건네주셨다.

    "소정아 괜찮아. 세상 사람들이 다 도움 주고받으면서 사는 거야. 상대방이 너에게 도움을 준 건 네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한 일이기 때문에 네가 그렇게 부담 가질 필요도 없어. 여기까지 와서 왜 굳이 하기 싫은 일을 하려고 하겠어? 도움 좀 받으면서 살아도 돼. 네가 받은 그 도움, 꼭 그 상대방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라도 갚으면서 그렇게 사는 거야."

    머리로는 너무나도 이해가 되는 말이었지만, 아니 솔직히 가슴으로도 이해가 가는 말이었다. 그런데 내 안의 무언가 깊은 곳에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도 부담이 되는 것 같아서 싫었다.





    이제 와서 내가 왜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했나 생각해보면, 아마도 나는 내가 주었던 많은 도움과 배려들 중에 소수는 내가 정말 진정으로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당시의 나는, 그 배려를 하면서 마음속으로 온갖 짜증과 화를 냈었다. 이 기억 때문에 나는 나에게 도움을 준 상대방이 과거의 나처럼 습관적으로, 혹은 의무감 때문에 원치 않는 행동을 한 것은 아닐지 불안해했고, 그래서 힘들어했던 것 같다.





    그렇게 힘들어한 몇 주가 지났다. 몇 주를 붙어 다닌 동행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딱 하루 전날, 우리는 아쉬운 마음에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전까지는 정작 당사자에게는 그때 도와줘서 고맙다거나 그 이후로 내 마음이 불편하다는 등의 말을 하지 못했다. 계속 얼굴을 볼 것 같은데, 괜히 말을 꺼내서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할까 싶어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은 우리가 헤어지기 직전이었고, 해가 뜨면 이제 헤어져서 앞으로 이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날 일은 없었기에 다들 취기가 오른 밤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당사자와 이야기를 했다.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그때 고마웠지만, 내가 마음이 불편했다. 괜히 짐이 된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하다고 솔직히 말을 했고, 그때 얻은 답변으로 마음의 짐을 좀 덜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그 동행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를 도와준 건 어차피 나도 시간이 좀 남아 있었고, 그렇다고 내가 그 시간에 뭐 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내가 조금 도와주면 좀 더 빨리 일을 끝낼 수 있어서였다. 그리고 내가 너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도 아니고, 내가 싫으면 안 했을 거였다. 그리고 만에 하나 내가 그 날 널 도와줬던 게 사실은 불편한 속내를 감추고 한 것이었고, 그로 인해서 너한테 미운 마음이 들었으면 당연히 동행을 그만 하면 되는 거였지, 여기까지 같이 다니지도 않았다."

    이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그동안 나를 위로해주었던 그 언니가 했던 말을 그대로 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당사자에게 들으니 두렵고 불안했던 마음이 한층 나아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 이후로도 나를 향한 도움과 배려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완전히 고치지는 못했다. 타고난 성격이 그러한 것이어서 쉽게 바뀌지 않는 듯했다. 심지어는 나는 상대방의 도움을 더 단호히 거절했다. 이후에 만난 동행은 도와주길 좋아하는 동행이었는데, 서로 동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를 때에는 나는 이 도움의 손길이 불편해서 단칼에 거절했고, 그때마다 그 동행은 자신을 싫어하나 싶은 마음도 들고, 때로는 상처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혼란스럽다. 나를 향한 배려와 도움을 그냥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거절을 해야 할지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마도 나는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는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머리로는 알지만, 차마 내가 행동하지 못할 뿐, 나를 향한 배려와 도움 같은 호의는 감사히 받고, 감사히 갚으면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앞으로도 수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살고, 또 받는 만큼 거절하면서도 살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다른 점이라면, 이제는 나를 향한 호의가 의무감일 때보다는,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경우가 조금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또, 내가 거절하는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도 하다. 나의 선택이 온전히 바뀌지는 않았지만, 이 두 가지를 깨닫고 나는 또 그 두 가지만큼 성장했다. 그리고 이렇게 소소하고 당연한 것을 '깨달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나는 앞으로도 나아갈 길이 많이 남았고, 그만큼 많이 성장할 가능성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천천히 하나씩. 그것이 배려를 감사히 받는 것이든, 깨달음이든, 조금씩 변화하게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떠났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