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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정 Jul 31. 2017

요즘 난 조금 덜 행복한 것 같아.

그래도 조금 뒤면 충분히 더 행복해질 것이란 마음이 들어.




    남미를 우기에 여행했던 나는 이 지긋지긋한 우기가 끝날 무렵, 아마존이 있는 루레나바케 마을로 떠나기로 했던 계획을 실현시키기로 했고, 이 때는 3월 중순이었다. 보통은 2월 말을 기점으로 우기가 끝난다고 하지만 3월 중순은 아직 위험했다. 우리나라도 9월 중순이 여름의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가을빛으로 온전히 물들지 못한 계절인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이때에도 후덥지근한 바람이 부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더 이해가 잘 되려나. 게다가 나는 그 당시에 비운의 아이콘이었다. 비(雨)운의 아이콘. 우기에 비가 많이 오는 건 당연한 이치지만, 유난히 비구름은 나를 따라다녔다.






    이런 날씨 탓인지, 아니면 나에 대한 불신 탓인지, 아니면 그냥 아마존에 대한 두려움 탓인지 나와 한참을 같이 다녔던 한국인 동행들도 루레나바케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900여 명이 있었던 카카오톡 채팅방에 글을 올리기도 했었는데, 비슷한 이유였는지 이곳에 나와 같이 가겠다고 한 사람 또한 없었다. (사실 이 맘 때는 아마존 여행 비수기다. 비가 많이 와서 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 꽤 되기 때문이다.) 동행을 구할 수 있었다면 며칠 더 기다려서라도 갔겠지만, 동행은커녕 주변을 돌아다니는 동안 한국인을 보기조차 힘이 들었다.





    각설하고, 나는 루레나바케까지 버스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루레나바케까지 가는 버스는 대단히 악명 높은 버스였는데, 20-22시간 정도를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산을 오르내리는 지옥의 구간을 달린다는 것이었다. 블로그를 찾아보아도 그랬고, 내가 가지고 있던 가이드북도 그랬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곤 루레나바케행 버스 티켓을 샀다.





    처음에는 티켓을 팔던 직원이 나에게 12시 30분 버스니까 12시까지 오라고 했다. 앞 뒤로 23킬로 정도 되는 배낭을 멘 나는 그 배낭을 짊어지고 12시에 다시 터미널로 찾아갔더니, 갑자기 아니란다. 1시 30분 버스니까 1시에 다시 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때 티켓을 살펴보니 1시 30분 버스라고 쓰여 있었고, 나한테 왜 12시 30분 버스라고 12시까지 오라고 했는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그 때 나는 1시간이나 시간을 잘못 알려준 것에 화가 나기 보다는 그저 이 배낭을 어딘가에 실어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럼 내 가방만이라도 넣어달라며 버스가 세워져 있던 곳으로 갔다.





    그런데 그 곳은 더욱 심각했다. 짐칸에 온갖 짐을 싣고 있었는데 각종 농산물과, 비닐로 덮인 무언가들을 넣는 그 칸에서 빨간색의, 왠지 냄새가 날 것만 같은 국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저 안에 내 가방을 넣을 생각을 하니 눈 앞이 캄캄해졌다. 혹시라도 저 국물이 실제로 냄새가 난다면? 내 가방에 묻는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더이상 짊어지고 다니다간 내 어깨가 사라질 것 같았으니까. 오만상을 하고 짐칸에 내 배낭을 밀어넣었다. 이미 들어간 배낭은 더이상 내가 통제할 수 없었기에 주린 배나 채우자며 앞에 있는 식당에서 치차론을 맛나게 먹고 출발 시간 즈음에 다시 터미널로 갔다.



   



    시간이 되어 버스에 올랐고, 해발 약 4000m에서 출발한 버스는 산을 조금 오르더니, 정상을 넘어 아마존과 맞닿은 루레나바케를 향해 계속 고도를 낮추었다. 분명히 멀미가 심한 사람들은 못 탈 정도로 비포장 도로를 달린다고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가파른 산을 깎아 만든 길이었기에 굽이 굽이 휘어지긴 했지만 정돈되고 포장된 길이었다. 이게 웬 횡재냐는 생각이 들었다. 20시간이 넘는 시간을 고생해서 갈 각오를 하고 탔는데 잠이 솔솔 올 만큼 길이 깨끗했다. 폭이 좁은 길에서 맞은 편에 오는 차를 위해 비켜 줄 때 종종 생명의 위협을 느끼긴 했지만, 그 정도면 참을 만 했다. 내가 터미널에서 고생한 것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만족감에 귤도 까먹고 과자도 까먹다가 잠이 들었다.



   



    오후 1시 반에 출발했으니 22시간이 걸리면 다음 날 아침 11시 반 쯤, 혹여나 빨리 가서 20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음날 아침 9시 반 쯤에 해가 뜬 후에 도착할 것이었기 때문에, 숙소도 잠지 않았지만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비포장 도로가 포장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 그저 신이 났으면 안되는 거였다. 비포장 도로를 달릴 때 20-22시간 정도가 걸린다는 것은 포장도로를 달릴 때엔 당연히 시간이 단축될 터였다. 게다가 이 포장 도로는 남미 최빈국이라는 볼리비아에서, 정부가 고속도로를 뚫어 놓은 것이었다. 고속도로를 쌩쌩 달려왔으니 당연히 도착시간이 훨씬 당겨졌는데, 절망스럽게도 새벽에 마을에 도착했다.





    새벽 5시 쯤, 해도 뜨지 않고, 내 눈도 떠지지 않던 그 시간에 버스는 터미널에 정차했다. 나는 현실을 부정하면서, 중간에 정차한 마을일거라 나를 세뇌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이 때 나를 보면서 외치는 한마디.

    "루레나바케!!"

    나는 이 말 조차 믿을 수가 없어서 핸드폰에 있던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켰고, 확인 사살을 당했다. 현위치 조회 결과 여기는 정확히 루레나바케 마을 터미널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에 대한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에 스쳤고, 그렇게 더럽고 더러웠던 버스에서 내렸다. 짐칸 앞, 바글바글한 사람들 속에 파고들지 못하고 나는 내 짐택을 손에 쥐고 멍하니 바라보다가, 가이드 북과 블로거를 원망하다가를 반복했다.





    "아미가! 아미가!"

    갑자기 내 귀에 이 말이 들렸다. 여자인 친구, 혹은 모르는 여자를 친근하게 부르는 단어다. 왠지 모르지만 나를 부른다는 확신이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선하게 생긴 청년이 있었다. 나를 보며 '툭툭'을 외치는 것을 보니 툭툭이 택시를 운전하는 기사인 듯 싶었다. 손님이 될 만한 사람을 태우려고 외친 것이었고, 자기 툭툭을 타고 가자고 했다. 나는 일단 이 선하게 생긴 사람을 믿기로 했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 내가 믿을 거라곤 없는 데다가 밑 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성선설을 믿는다. 게다가 이 사람은 충분히 믿어도 될 만큼 순하게 생겼었다. 그래서 일단 알겠다는 의사를 표현하곤 아직 내 짐이 짐칸에 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착하게 생긴 그 자가 내 짐택을 뺏어들더니 짐칸에서 내 짐을 꺼내주었다. 그리고는 이 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그렇게 아수라장에서의 30분이 지나고 툭툭에 탈 수 있었다.




    아까 그 사람은 툭툭이 기사가 맞았고, 그가 운전하는 툭툭에는 나를 포함한 어른 셋에 어린 아이 한 명이 있었다. 거의 매달리다시피 마을의 중심을 향해 내달렸고, 기사는 나에게 제일 먼저 호스텔을 물었다. 하지만 날이 밝으면 찾아 볼 생각에 예약을 하지 않은 채로 왔기 때문에 나는 조용히 'no hostal..'을 외쳤다. 기사는 알아들었는지 더 묻지 않고 다른 승객을 내려 주었다. 아이와 그 엄마를 내려주고 이제 툭툭에는 나까지 두 명의 승객이 남았다. 할아버지 손님이었는데, 알고보니 선교사라고 했다. 이 작은 마을에 선교를 하러 온 것인지, 아니면 종교적인 어떤 사명을 이루러 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전도를 했고, 짧은 시간이지만 영어로 전도를 당한 나는 다시 멘붕상태로 빠져버렸다. 그렇게 5분 정도를 더 달려 그 할아버지까지 내리고, 이제는 진짜로 나만 남았다. 다시 한 번 호스텔을 묻는 그 기사에게 나는 짧은 (거의 없는) 스페인어로 나 호스텔 예약을 못했고, 네가 추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알겠다는 듯이 옅게 웃어보이더니 또 5분을 달려갔다.




    어찌저찌 알아들었는지, 나를 호스텔 앞에 내려 준 그 착한 기사는, 짐도 문 앞까지 들어다주고 호스텔 벨도 눌러줬다. 호스텔 직원이 나오자 내 설명을 좀 해주는 듯 하더니 잘 있으라고 하면서 툭툭이를 타고 가버렸다. 한참 자다가 나온 듯 한 스탭은 눈은 못 떴지만 따뜻한 말투와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겨 주었고, 그 새벽에 추가요금도 받지 않고 나에게 방을 주었다.






    이 이후를 생각해 보더라도 루레나바케에서의 기억이나 투어가 성공적이진 못했다. 투어 프로그램의 절반은 못한 데다가 모기에게 엄청나게 뜯겼으며, 돌아가는 나에는 일사병에 걸리기 직전이었다. 아마존에 가는데 긴팔 옷도 모두 잃어버렸다. 하지만 나에게 루레나바케는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 중 하나다. 따뜻한 사람들과, 나에게 베풀어준 친절도 좋았고, 내가 지녀온 성선설에 대한 믿음도 확인 받은 것 같아서 좋았기 때문인 듯 하다.









    이렇게 인생은 무언가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기고,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지나치게 좋아하고 자만하면 다시 나쁜일이 생기지만, 이 나쁜일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좋은일이 다시 생기는 것의 반복인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종종 권태로움과 나쁜 감정에 휩쓸리고 있었지만, 과거의 일기장을 살펴 보면서 굳이 현실을 비관하며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다시 새삼 느껴보는 오늘이었다. 7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나는 이 기분 하나로 충분히 행복하다. 내 1년을 연속된 것이라 시간을 쪼개는 것이 부질없는 것임을 알지만, 마지막 날인 오늘 행복했기 때문에 나는, 이번 7월도 행복하게 해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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