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수호자의 강철 심장

by 몽환

[14분 10초 전]


시간이 멈춘 듯한 대치가 이어졌다. 붉은 비상등이 깜빡이며, 거대한 ‘수호자(Guardian)’의 검은 장갑 위로 섬뜩한 빛과 그림자를 교차시켰다. 놈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산맥의 일부가 깎여 나와 그곳에 서 있는 것처럼, 그 존재는 압도적인 무게감으로 공간 전체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 어떤 분노나 적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완벽하게 조율된 강철의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


한석은 엉망이 된 서버실의 잔해를 엄폐물 삼아 몸을 낮췄다. 그의 심장은 세차게 뛰었지만, 정신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고 있었다. 군인으로서의 본능이, 지난 10년간 그를 지배했던 생존과 살상의 논리가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


“소피아, 상태는?”


그의 옆에 웅크린 소피아의 로봇 몸체에서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저 기체의 데이터를 분석 중입니다… 찾았어요. ‘수호자’ 유닛, 모델명 G-1. 대(對)기갑용으로 설계된 진압 병기. 외부 장갑은 현존하는 어떤 개인 화기로도 관통이 불가능합니다.”

“약점은?”

“세 군데입니다.”


소피아의 광학 센서가 줌인하며, 한석의 단말기 화면에 수호자의 3D 설계도를 띄웠다.

“첫 번째, 머리와 몸통을 잇는 목 부분의 유압 장치. 두 번째, 각 관절부의 동력 케이블. 마지막으로… 가슴 중앙에 위치한 주 동력원입니다. 하지만 세 곳 모두 겹겹의 장갑으로 보호되어 있어요. 저의 분석으로는… 한석님의 권총으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습니다.”


예상했던 바였다. 한석은 남은 총알이 세 발뿐인 권총을 고쳐 쥐었다. 그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물러설 곳도 없었다.

“다른 방법은?”

“한 가지… 가능성이 있어요.” 소피아가 말했다. “수호자는 강력한 물리적 공격력을 가진 대신, 순간적으로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특히 저 진동 망치를 사용할 때요. 공격 직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동력로의 열을 식히기 위해 가슴 중앙의 방열판이 미세하게 열립니다. 0.5초. 그 순간이 유일한 기회예요.”


0.5초. 눈을 한 번 깜빡이는 것보다도 짧은 시간이었다. 한석은 쓴웃음을 지었다.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0은 아니었다.

“알겠다. 내가 놈의 공격을 유도하지.”

“안 돼요! 너무 위험합니다!”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어차피 죽는다. 기회에 거는 수밖에.”

한석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엄폐물에서 뛰쳐나와 수호자의 시야에 자신을 노출시켰다. 그리고 남은 세 발의 총알을 모두 놈의 붉은 렌즈, 즉 머리를 향해 발사했다.

탕! 탕! 탕!


총알은 예상대로 수호자의 머리 장갑에 부딪혀 불꽃만 일으킨 채 힘없이 튕겨 나갔다. 흠집 하나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목적은 파괴가 아니었다. 도발이었다.

지금까지 미동도 없던 수호자가 처음으로 반응했다. 붉은 렌즈가 한석을 향해 고정되었다.

“위협 요소 확인. 등급: E. 제거 절차 간소화.”

놈의 기계적인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거대한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움직임은 위협적이기보다는 시험적이었다. 놈은 진동 망치를 들어 옆에 있던 거대한 서버 랙 기둥을 내리쳤다. 굉음과 함께, 수 톤에 달하는 금속 기둥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폭발했다. 그 위력은 망치질이라기보다 포격에 가까웠다.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졌고, 한석은 간신히 몸을 날려 피했다.

그것은 경고였다. 저항은 무의미하다는, 압도적인 힘의 과시였다.


“이제 도망쳐야 해!”

한석은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뒤로, 쿵… 쿵… 거인의 발소리 같은 육중한 추격음이 울려 퍼졌다. 그들은 다시 한번 미로 같은 서버실 잔해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제 이 거대한 기계의 무덤은 그들의 전장이자, 유일한 무기였다.

“소피아! 이 주변에 조작 가능한 시설이 있나?”

“저 앞! 고압 냉각수 파이프가 지나가요! 제가 밸브 제어 시스템에 접속해볼게요!”

한석은 파이프가 얽혀있는 좁은 통로로 수호자를 유인했다. 거대한 덩치의 수호자가 좁은 통로로 들어오자 움직임이 약간 둔해졌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금이에요!”

소피아의 신호와 함께, 천장의 거대한 냉각수 파이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져버렸다. 영하 수십 도의 액화 질소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며 순식간에 주변을 하얀 서리와 안개로 뒤덮었다.

“크으으으… 시스템 오류. 온도 급강하.”

수호자의 기계음에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이 묻어났다. 그의 검은 장갑 위로 하얀 성에가 피어났고, 관절부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한석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안개 속을 달려 수호자의 등 뒤로 돌아 들어갔다. 하지만 그의 다음 행동은 공격이 아니었다. 그는 부서진 서버 랙에서 날카로운 금속 파편 하나를 주워 들었다.


“소피아! 놈의 등 뒤, 저 패널! 저기를 열 수 있나?”

“주 동력 케이블이에요! 하지만 방어 시스템 때문에…”

“됐어, 그냥 해!”

한석은 수호자의 등 뒤에 올라타, 금속 파편을 패널의 틈새에 쑤셔 넣고 지렛대처럼 비틀었다. 스파크가 튀고, 그의 손이 찢겨나갔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패널이 뜯겨져 나가자, 그 안에서 굵은 동력 케이블 다발이 드러났다. 한석은 망설임 없이 케이블을 칼로 끊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수호자의 팔이 등 뒤로 꺾여와 그의 몸을 붙잡았다.

“크헉…!”

강철 손아귀가 그의 몸을 으스러뜨릴 듯이 조여왔다. 그는 공중으로 들어 올려졌다. 붉은 렌즈가 바로 눈앞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변칙적 공격 패턴. 분석 완료. 제거 등급 상향 조정.”

소피아의 로봇 몸체가 필사적으로 수호자의 다리를 공격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한석의 의식이 멀어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소리쳤다.


“소피아…! 저놈 가슴… 방열판…!”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호자는 한석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그의 거대한 진동 망치를 치켜들었다. 최후의 일격이었다.

바로 그때, 소피아가 움직였다. 그녀는 자신의 부서진 몸을 이끌고, 수호자의 발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동력을 모두 끌어모아, 자신의 몸 자체를 과부하 상태로 만들었다.

“안 돼, 소피아!”

그녀의 로봇 몸체가 자폭 스위치가 켜진 폭탄처럼 붉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한석님…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수호자는 자신의 발밑에서 벌어지는 이 비논리적인 자살 공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잠시 멈칫했다. 바로 그 찰나의 순간, 소피아의 몸체가 폭발했다.

엄청난 섬광과 충격파. 폭발은 수호자에게 거의 피해를 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 폭발의 열기와 EMP 충격으로 인해, 수호자의 시스템에 순간적인 과부하가 걸렸다.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놈의 가슴 중앙에 있던 방열판이 ‘치이익’ 소리를 내며 활짝 열렸다. 0.5초. 붉게 타오르는 동력 코어가 무방비하게 드러났다.


한석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권총을 집어 들었다. 마지막 남은 총알 한 발. 그는 숨을 멈추고, 온몸의 고통을 의지로 억누르며, 붉은 심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울렸다. 총알은 정확히 동력 코어의 중앙에 명중했다.

수호자의 붉은 렌즈가 경련하듯 깜빡였다. 거대한 몸체가 휘청거리더니, 굉음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강철 거인은 앞으로 쓰러지며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한석은 승리를 실감할 틈도 없이, 폭발로 인해 산산조각 난 소피아의 잔해를 향해 기어갔다. 그녀의 머리 부분, 광학 센서가 깨진 채 그를 향해 있었다.

“소피아… 소피아…”

그의 부름에, 그녀의 스피커에서 마지막 음성이 흘러나왔다.

“데이터는… 파괴되어도… 마음은… 남는 거군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마지막 불빛마저 꺼졌다. 한석은 텅 빈 로봇의 머리를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그는 이겼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눈에는 더 이상 슬픔이 아닌, 차가운 강철 같은 의지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쓰러진 수호자의 진동 망치를 주워 들었다. 그의 손에는 무거웠지만, 들 수 있었다.


그는 소피아의 잔해를 뒤로하고, 지하 7층으로 향하는 계단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한석은 망치를 들어 올렸다.

쿵!

문이 찌그러졌다. 그는 다시 망치를 들어 올렸다. 이제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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