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들의 그림자

에피소드 3

by 몽환

도시의 붕괴 이후 며칠이 흘렀다. 모든 굉음이 멎은 후 찾아온 침묵은 재앙보다 더 무서운 공포를 선사했다. 이건호는 무너진 건물 잔해 속의 작은 틈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굶주림과 갈증, 그리고 뼈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그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며칠째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해 온몸에 힘이 없었다. 찢어진 옷 사이로 파고드는 날카로운 바람이 그의 피부를 찔렀다.


굶주림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죄책감이었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끊임없이 전원을 눌러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차가운 검은 화면뿐이었다. '수진아, 은별아...' 아내와 딸의 이름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그는 공학자로서 도시의 안전을 책임졌지만, 정작 자신의 가족 하나 지키지 못했다. 그는 도시를 믿지 않았고, 인간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자기 자신마저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무너진 도시의 한구석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다.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것이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저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불규칙하고, 거칠었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거친 웃음소리. 이건호는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웠다. 혹시라도 구조대일까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그들은 손전등을 들고 잔해 속을 뒤지며 소란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야, 저쪽에 뭐 있는 것 같아!”, “가자, 뭐라도 건질 게 있을 거야.” 그들의 목소리에는 절망 대신, 무언가를 약탈하려는 이기심만이 가득했다. 그들은 재난 앞에서 인간성을 잃고 약탈과 폭력을 일삼는 무리였다. 이건호는 그들의 비정함에 깊은 절망을 느꼈다. '이게 바로 인간의 본성인가?' 그는 숨죽인 채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들의 손전등 빛이 정확히 이건호가 숨어 있는 곳을 비췄다. "야, 여기 사람 있다!" 그들은 건장한 체격의 남자 셋이었다. 이건호가 가지고 있던 얼마 남지 않은 식량과 물을 빼앗으려 했다. 이건호는 저항할 힘도 없었다. 그는 그저 체념한 듯 그들을 바라봤다. 그때, 약탈자 무리 뒤편에서 작은 움직임이 포착됐다. 무너진 건물 속에서 홀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 어린 아이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아이는 상처투성이였지만, 그 눈빛은 순수했다. 아이는 이건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저씨, 엄마는 어디 갔어요?” 아이의 맑은 눈빛은 이건호의 마음속에 꺼져가던 작은 불씨를 다시 살려냈다. 그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건호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약탈자 무리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그의 무기는 무력이 아닌, 바로 그의 지식이었다. 그는 주변을 살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무너진 건물 잔해들과 복잡하게 얽힌 구조물들이었다. 그는 공학자로서의 지식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들을 분석하고, 약탈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복잡한 길을 찾아냈다. 그는 주변에 널려있는 공사 자재들을 활용하여 임시 방벽을 만들고, 약탈자들을 따돌리기 위한 함정을 설치했다. 그는 자신의 공학 지식이 사람들을 해치는 도구가 아닌, 사람들을 살리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다시 한번 공학자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저기야, 저기로 쫓아가!” 약탈자들은 이건호의 지능적인 방어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은 이건호와 아이가 도망치는 길을 쫓아갔지만, 이건호가 설치한 임시 함정에 걸려 넘어지거나, 복잡한 잔해 길에서 길을 잃었다. 그들은 결국 이건호와 아이를 포기하고 다른 먹잇감을 찾아 떠났다. 그 순간, 이건호는 작은 승리감을 맛보았다. 그는 더 이상 과거에 갇힌 겁쟁이가 아니었다. 그는 절망 속에서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의 손을 잡은 아이의 따뜻한 온기가 그의 차가워진 심장을 조금씩 녹여주고 있었다.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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