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7
이건호가 보낸 전파기 메시지는, 도시의 폐허 어딘가에 숨겨진 비밀 벙커로 전달되었다. 그곳은 붕괴된 도시와는 전혀 다른, 최첨단 장비와 깨끗한 공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김진우는 미세하게 떨리는 전파기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진실은, 싱크홀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당신의 머릿속에 있습니다." 이건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진우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분노나 당황 대신,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역시, 이 박사님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는군요." 그는 이건호의 도전장을 게임처럼 여기고 있었다.
김진우는 이건호의 메시지를 분석하며 지도를 펼쳤다. 이건호가 어디에 있는지, 그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파악해야 했다. 김진우는 이건호의 지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건호가 단순히 힘에 굴복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욱 흥미로워했다. "이 게임, 아주 재밌어지겠군." 김진우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건호가 보낸 신호가 어디서 발신되었는지 추적해. 그리고 그 지역에 무인 드론을 보내."
한편,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 모여 있던 생존자들은 이건호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건호는 '프로젝트 오메가'의 자료를 바탕으로 도시의 지반 센서 네트워크가 아직 일부 살아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들은 scavenge한 전자 부품과 이건호의 기술 지식을 이용해, 죽어 있는 도시 네트워크에 거짓 신호를 흘려보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민지은은 낡은 전자기기들을 수리했고, 박진태는 처음에는 불만을 터뜨렸지만, 이건호의 치밀한 계획에 점차 몰입하고 있었다.
"박진태 씨, 이 회로를 센서에 연결하고, 제가 신호를 보내면 전원을 켜세요." 이건호의 지시에 박진태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마치 거대한 도시를 체스판 삼아, 상대방의 수를 읽고 다음 수를 준비하는 체스 기사들처럼 움직였다. 그들의 목표는 김진우를 속여, 자신들이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들의 계획은 성공하는 듯했다. 김진우의 무인 드론이 이건호가 심어놓은 거짓 신호의 위치로 향했다. 이건호와 생존자들은 숨죽인 채 결과를 기다렸다. 드론이 목표 지점에 도착하자, 이건호가 조작한 신호가 전파되었다. 김진우는 드론의 카메라를 통해 무너진 건물 잔해를 확인하고, 이건호가 그곳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김진우의 눈에 의문이 스쳤다. "이상하군. 너무 쉽게 찾았잖아."
김진우는 이건호가 자신을 유인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이건호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건호는 쉽게 잡힐 사람이 아니었다. 김진우는 드론을 회수하며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이건호가 보낸 메시지의 미세한 파동을 다시 분석해. 그리고 그가 과거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그의 약점을 찾아내."
며칠 후, 이건호가 사용하던 생존 전파기에 새로운 신호가 잡혔다. 김진우가 보낸 것이었다. “이 박사님, 가족은 잘 계십니까?” 이건호는 충격에 휩싸였다. 김진우는 이건호의 가족이 재난으로 사망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는 일부러 이런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김진우는 이어서 이건호의 딸 은별이가 과거에 그렸던 그림 파일 하나를 전송했다. 그 파일은 이건호의 컴퓨터에만 저장되어 있던 것이었다. "은별이 그림을 보니, 아이디어가 떠오르는군요. 이 그림을 이용해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물론, 제가 생각한 방식으로 말이죠."
이건호는 이를 악물었다. 김진우는 단순한 재앙의 주범이 아니었다. 그는 이건호의 가장 깊은 상처를 건드려, 그를 정신적으로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다. 이건호는 이제 생존자들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가족을 잃은 슬픔과 분노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그의 개인적인 복수는 이제 도시의 운명과 얽힌 거대한 싸움으로 번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