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8
김진우가 보낸 메시지는 이건호의 심장을 꿰뚫었다. 딸 은별이가 그린 그림 파일. 이건호의 컴퓨터에만 저장되어 있던 그 그림은, 이건호가 알고 있는 모든 데이터를 조작한 김진우의 손에 놀림감이 되어 돌아왔다. 그림 속에는 지아와 자신이 사는 집이 그려져 있었고, 그 옆에는 이건호가 딸에게 보여줬던 '하이드로 프로젝트'의 거대한 설계도 일부가 엉성하게 겹쳐져 있었다. 이건호는 그림을 보며 손을 떨었다. 김진우는 단순한 재앙의 주범이 아니었다. 그는 이건호의 가장 깊은 상처를 건드려, 그를 정신적으로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다.
이건호는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감정으로 온몸이 마비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민지은은 그의 옆에서 그를 다독였지만, 이건호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은별이의 얼굴과 김진우의 비웃음만이 가득했다. "이건호 씨, 진정하세요. 김진우는 당신의 감정을 가지고 놀고 있는 겁니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합니다." 민지은의 목소리가 가까스로 그의 이성을 붙잡았다. 하지만 박진태는 이건호의 흔들리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보세요! 이 사람, 이제 제정신이 아니야.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려서 우리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거라고! 지금 당장 이 사람을 쫓아내고, 우리가 알아서 살 길을 찾아야 합니다!"
박진태의 선동에 몇몇 생존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미 이건호의 지식에 의지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언제든 배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기적인 존재들이었다. 이건호는 그들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며 깊은 절망을 느꼈다. 그는 이제 단순히 리더십을 증명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정신력까지 지켜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건호는 지아의 그림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김진우가 보낸 그림은 그냥 그림이 아니었다. 이건호는 그림 속에서 묘하게 겹쳐진 '하이드로 프로젝트'의 설계도 일부를 보며, 자신의 머릿속에 각인된 지반 데이터와 연결시키려 했다. 공학자의 직감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림 속의 불규칙한 선들이, 과거 자신이 묵살당했던 보고서의 지반 데이터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 선들이 단순한 그림이 아닌, 특정 위치를 가리키는 좌표임을 알아챘다. 그곳은 도시의 심장부, '하이드로 프로젝트'의 최심부에 위치한, 가장 위험하고 불안정한 지역이었다.
"김진우는 나를 그곳으로 오라고 하는 겁니다. 이것은 단순한 놀림이 아니라, 저에게 던지는 또 하나의 미끼였습니다." 이건호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함께 명확한 목적의식이 담겨 있었다. 민지은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그곳은 가장 위험한 곳입니다. 자칫하면 도시 전체가 다시 한번 붕괴될 수도 있어요." 이건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들은 도시를 완전히 무너뜨릴 생각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 혼란 속에서 새로운 것을 건설하려 할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 그들의 진짜 목적이 숨겨져 있을 겁니다."
이건호는 박진태와 다른 생존자들을 향해 말했다. "나는 그곳으로 갈 겁니다. 진실을 밝히고, 김진우를 막아야 합니다. 당신들은 이곳에 남아서 이 거점을 지키세요." 박진태는 비웃으며 말했다. "혼자 가서 죽으십시오. 우리는 여기 남겠습니다." 이건호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그는 자신을 믿어주는 몇몇 생존자들과 함께, 지아의 그림 속 좌표를 따라 도시의 심장부로 향하는 위험한 여정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곳에는 김진우의 함정과 그들이 숨기려 했던 재앙의 진짜 원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호는 지아의 손을 잡고 무너진 도시의 중심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손에는 무기가 아닌, 지아의 그림과 '프로젝트 오메가'의 모든 진실이 담긴 데이터 칩이 들려 있었다. 그는 이제 단순히 생존을 넘어, 가족을 잃은 슬픔과 분노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그의 개인적인 복수는 이제 도시의 운명과 얽힌 거대한 싸움으로 번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