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최심부

에피소드 9

by 몽환

이건호와 민지은, 그리고 믿음직한 몇몇 생존자들은 지아의 그림이 가리키는 도시의 심장부를 향해 나아갔다. 그들의 발밑에 펼쳐진 도시는 이미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거대한 균열들이 거미줄처럼 뒤엉켜 있었고, 그 사이로 불안정하게 서 있는 건물 잔해들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이건호의 공학 지식이 없었다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죽음의 미로였다.


이건호는 지반의 미세한 진동과 기울어진 건물들의 하중을 계산하며 가장 안전한 경로를 찾아냈다. 민지은은 부상자를 돌보며 이건호의 곁을 지켰고, 다른 생존자들은 이건호의 지시에 따라 묵묵히 움직였다. 그들의 유일한 믿음은, 과거의 참사를 막지 못했던 이건호의 지식이었다.


"이건호 씨, 저기 좀 보세요." 민지은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무인 드론 한 대가 떠 있었다. 그 드론은 이건호가 '프로젝트 오메가'의 자료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디자인이었다. 김진우의 함정이었다. 드론은 이건호의 일행을 향해 접근했고, 이건호는 재빨리 모두를 잔해 속으로 숨겼다. 드론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그들이 있던 자리를 맴돌았다. 이건호는 드론의 주파수를 분석하며, 그것이 단순한 감시 장비가 아님을 깨달았다. 드론은 지반의 진동을 유발하는 음파 무기였다.


"이건 우리를 막으려는 게 아니야. 우리를 유도하려는 겁니다." 이건호는 드론이 유발하는 진동의 패턴을 역이용하여, 무너질 것 같은 건물 잔해를 드론이 있는 쪽으로 유도했다. 드론은 잔해에 부딪혀 파괴되었고, 이건호의 일행은 간신히 위기를 벗어났다.


이건호의 전략이 성공하자, 김진우는 또 다른 미끼를 던졌다. 드론이 파괴된 지점에서 이건호의 생존 전파기로 새로운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다. “놀라운데요, 이건호 박사님. 역시 당신의 지식은 녹슬지 않았군요. 하지만 당신의 딸도 당신만큼 똑똑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김진우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이건호의 귓가에 박혔다. 이건호는 이성을 잃을 뻔했지만, 민지은이 그의 손을 잡았다. "지금 감정에 휘둘리면, 그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겁니다." 이건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제 김진우의 심리전에 말려들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윽고 그들은 지아의 그림이 가리키던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은 무너진 도시 한복판에 홀로 온전하게 서 있는 거대한 지하 시설이었다. 입구에는 '하이드로 프로젝트'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었지만, 이건호는 그 안에서 훨씬 더 거대한 음모가 숨겨져 있음을 직감했다. 이건호와 민지은은 조심스럽게 시설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폐허 속의 오아시스처럼 깨끗하고 정교했다. 그리고 그곳의 중앙에는 이건호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거대한 기계 장치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순간, 김진우가 등장했다. 그의 뒤에는 무장한 사설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건호 박사님.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김진우는 이건호의 손에 들린 데이터 칩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저에게 주시면 됩니다. 그래야 당신의 딸 은별이도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 테니까요." 이건호는 분노했지만, 애써 참았다. 그는 거대한 기계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게 대체 뭡니까? 도시를 무너뜨린 게, 이겁니까?"


김진우는 이건호의 질문에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이것은 단순한 지반 제어 장치가 아닙니다. 이것은 '프로젝트 오메가'의 최종 결과물입니다. 이 도시는 거대한 실험장이었습니다. 지반 침하는 새로운 세상을 위한 '청소' 과정이었을 뿐이죠. 무너진 도시 위에, 우리가 원하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겁니다." 이건호는 경악했다. 김진우의 야심은 단순한 돈과 권력이 아니었다.


그는 도시를 무너뜨려, 모든 것을 통제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김진우는 이어서, 이건호의 가족이 재난으로 사망하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는다. "당신의 가족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제가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죠. 저에게 협력하면, 당신의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이건호는 모든 것을 잃은 줄 알았지만, 가족이 살아있다는 희망과 함께, 김진우의 거대한 야망 앞에서 최후의 선택을 강요받게 되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무너진 도시의 비밀을 품고 있는 데이터 칩이었지만, 김진우의 손에는 그의 가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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