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통의 시도

4장. 빙하 아래의 비밀

by 몽환

뉴욕의 혼돈 속에서도 윤하와 선우는 시리가 보낸 미지의 신호를 해독하는 데 매달렸다. '오션프론티어'가 도시를 장악하고 거짓 치료제를 살포하는 동안, 그들은 시리의 격리 시설 옆에 임시 연구실을 차렸다. 강 박사도 모든 회의를 제쳐두고 그들을 지원했다. 시간은 없었지만, 이 미지의 신호 속에 인류를 구할 유일한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그들을 지탱했다.


"이건 단순한 언어가 아니에요." 윤하가 고대 유물 파편을 든 손으로 시리가 그려낸 듯한 홀로그램 이미지를 짚었다. 시리는 윤하와 파편을 통해 간헐적으로 교감하며, 자신의 기억 속 이미지와 에너지 파동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미지, 감정, 그리고 어떤 기하학적인 패턴들이 뒤섞여 있어요. 마치… 시리의 의식이 직접 우리의 뇌에 정보를 주입하는 것 같아요."


선우는 자신의 패드에 시리의 에너지 파동을 분석한 그래프를 띄웠다. "그래프를 보면, 파동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분명한 규칙성이 있습니다. 특히 고대 도시의 에너지 흐름과 바이러스 파장의 패턴이 동시에 나타납니다. 시리는 바이러스와 도시의 에너지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려주려는 것 같아요." 지반 공학자로서 그는 복잡한 시스템의 흐름을 본능적으로 이해하려 애썼다.


강 박사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지능과 인지 능력은 우리가 아는 생명체의 범주를 넘어선다. 그녀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마치 '인류'라는 종 전체를 이해시키려는 것처럼 보여."

시리가 다시 유리벽에 손을 얹었다. 이번에는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유물 파편과 윤하의 눈을 번갈아 응시하더니, 새로운 이미지들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대 문명의 문자들이었다. 단순한 상형문자가 아니었다.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움직이며 형태를 바꾸는 복잡한 기호들이었다.


"이건… 고대 문명의 진짜 언어예요!" 윤하의 눈이 빛났다. 그녀는 즉시 언어학 데이터베이스를 열어 유사 패턴을 검색했지만, 결과는 없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언어와도 일치하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해독하죠?" 선우가 난감한 듯 물었다. "번역기가 없는 이상…." 윤하는 고개를 저었다. "번역기가 필요 없는 언어일 수도 있어요. 시리가 우리에게 이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을 가르쳐주려는 건 아닐까요? 단순한 해독이 아니라, 그녀의 의식과 직접 연결되어 이해하는 방식…."


그녀는 과감하게 유물 파편을 시리의 손에 닿게 했다. 차가운 유리벽을 통해 두 개의 파편, 즉 유물과 시리의 손이 맞닿는 순간, 유물 파편에서 강렬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시리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 파동이 연구실 전체를 감쌌다. 윤하의 머릿속에는 엄청난 양의 정보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고대 문명의 역사, 그들의 철학, 우주에 대한 이해, 그리고 바이러스의 근원과 본질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까지.


윤하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 정보들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었다. 수만 년 동안 축적된 지혜와 고통, 그리고 절망이 담긴 거대한 의식의 흐름이었다. 그녀는 고대 문명이 스스로를 '얼음 아래의 존재'라고 칭했으며, 그들은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해 자신들의 생명 에너지를 사용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봉인의 길을 택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봉인은 바이러스를 잠재웠을 뿐, 완전히 소멸시키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후대에 자신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경고를 남겼다.


"바이러스는… 단순한 병원체가 아니었어요." 윤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눈은 이미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건… 고대 문명의 에너지에 기생하는 존재였어요. 그들이 가진 생명 에너지가 바이러스를 활성화시키고 변이시키는 촉매가 되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도시와 함께 바이러스를 얼음 속에 가둬둔 거예요."


선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럼 빅터의 치료제는…?" "그건 바이러스에게 먹이를 주는 것과 같아요." 윤하가 말했다. "오션프론티어가 주입하는 고대 에너지 파장은 바이러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더 빠르고 강력하게 증식하도록 만들고 있어요. 그래서 뉴욕의 감염률이 폭증하는 거였어요."


강 박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뒤로 물러섰다. 그의 이성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이었다. 인류가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고 있었다니.

바로 그때, 연구실의 통신망이 끊겼다는 비상 알람이 울렸다. 밖에서는 '오션프론티어' 소속의 보안 요원들이 연구소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빅터가 진실을 눈치채고, 그들을 침묵시키려 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런! 빅터가 결국 일을 저지르는군!" 강 박사가 다급하게 비상 탈출 경로를 확인했다. "우리는 이 진실을 외부에 알려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윤하는 시리가 보낸 신호의 마지막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것은 빙하 아래 고대 도시의 심장부, 즉 피라미드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피라미드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장치, 도시의 모든 에너지를 제어하는 핵심 시스템이었다. 시리는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곳에 바이러스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 그리고 인류를 구할 단서가 숨겨져 있었다.


"다시 그곳으로 가야 해요." 윤하가 선우를 바라보았다. "빙하 아래 고대 도시로. 시리가 알려준 정보에 따르면, 그곳에 바이러스를 완전히 봉인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빅터가 진실을 알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장치를 확보해야 해요."


선우는 잠시 망설였다. 다시 그 지옥 같은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죽음을 의미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윤하의 눈빛에는 결의가 가득했다. 그의 트라우마와 두려움도 그녀의 강한 의지 앞에서는 무력했다. 지반 공학자로서 그는 언제나 안정과 안전을 추구했지만, 지금은 인류의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좋습니다." 선우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가죠.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그곳에 있다면…."


그들이 연구실 문을 나서자마자, '오션프론티어'의 보안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총성과 함께 혼란이 시작되었다. 윤하와 선우, 그리고 강 박사는 시리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그곳을 탈출했다. 그들은 뉴욕의 물에 잠긴 거리를 헤치며, 다시 한번 빙하 아래의 미지로 향하는 길을 찾아야 했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찾아 빙하의 심장부로 향하는 그들의 처절한 여정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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