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빙하 아래의 비밀
뉴욕의 물에 잠긴 거리를 헤치고 탈출하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힘들었다. '오션프론티어'의 보안 요원들이 도시 곳곳을 통제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눈을 피해 이동하는 것은 마치 숨 막히는 숨바꼭질 같았다. 윤하, 선우, 강 박사, 그리고 시리까지 네 명은 폐허가 된 건물들의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채, 남극행 항공정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시리는 그들을 이끄는 듯, 앞장서서 미로 같은 거리를 지나갔다. 그녀의 푸른 눈은 어둠 속에서도 빛났고, 그 빛은 마치 그들이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 같았다.
"젠장, 저들이 우리를 놓치지 않을 겁니다." 선우가 낡은 난간 뒤에 몸을 숨기며 말했다. 그의 손에는 작은 스캔 장비가 들려 있었다. "바이러스 확산을 명분으로 도시에 센서들을 깔아놓았습니다. 우리의 위치가 곧 파악될 거예요."
강 박사의 얼굴은 불안감으로 가득했다. "빅터는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의 계획대로 되기를 원하고 있어. 진실을 아는 우리가 살아남는다면, 그들의 거짓말은 모두 무너질 테니."
바로 그때, 그들의 머리 위로 굉음이 울렸다. '오션프론티어' 소속의 소형 드론이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드론의 탐색 불빛이 그들이 숨어 있는 곳을 훑고 지나갔다. 시리는 재빨리 그들을 이끌고 물에 잠긴 건물 안으로 몸을 숨겼다. 침수된 1층 로비는 역한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고, 물 위로는 쓰레기와 부유물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윤하는 코를 막으며 주위를 살폈다. 익숙했던 도시의 모습은 사라지고, 오직 재앙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시리는 멈춰 서더니, 벽면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손이 닿은 부분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퍼져나왔다. 윤하의 유물 파편도 반응하듯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벽면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이 홀로그램처럼 떠올랐다. 그것은 뉴욕의 과거 모습이었다. 고층 빌딩들이 우뚝 솟아 있고, 사람들이 활기차게 거리를 걷는 모습. 하지만 그 그림들은 점차 일그러지더니, 건물들이 물에 잠기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절망적인 풍경으로 바뀌었다.
"시리가… 우리가 겪고 있는 재앙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윤하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곳의 지반이 무너지고 물이 차오르면서, 도시 전체가 그녀의 고대 문명과 비슷하게 변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선우는 벽면의 홀로그램을 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지반 공학적 데이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침수 지역의 지반 침하 속도와 패턴이 그녀가 보여준 이미지와 똑같습니다. 마치… 이 도시의 미래가 이미 고대 문명에 예견되어 있었던 것처럼…."
그때, 시리는 다시 그들을 이끌고 건물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폐허가 된 건물의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은 이미 물에 잠겨 있었다. 강 박사가 망설이자, 시리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시키려는 듯한 몸짓을 보였다. 그녀의 발끝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고, 물에 잠긴 계단이 마치 공기가 찬 것처럼 보였다.
"이게… 그녀의 능력인가?" 강 박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들은 시리를 따라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놀랍게도 그들의 방호복은 전혀 젖지 않았다. 마치 투명한 보호막이 그들을 감싸고 있는 듯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길고 어두웠다. 그들은 마침내 오래된 지하철 터널에 도착했다. 터널 안은 물로 가득 차 있었고, 낡은 지하철 차량들이 녹슨 채로 멈춰 있었다. 곳곳에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한 붉은 발진을 가진 시체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윤하와 선우는 공포에 질려 눈을 감았다. 이것은 그들이 빙하 아래에서 보았던 고대 문명의 최후와 다를 바 없었다.
바로 그때, 터널 저 멀리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오션프론티어'의 드론이 지하 터널까지 수색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시리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 윤하와 선우에게 자신의 손을 잡으라고 했다.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윤하와 선우의 몸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시리는 그 빛을 이용해 그들의 몸을 마치 빛의 입자처럼 흩어지게 만들었다.
"이게… 뭐지?" 선우의 목소리가 당황스러움에 떨렸다. 그의 몸은 더 이상 물리적인 형태가 아니었다. 빛의 입자가 되어 터널의 벽면을 통과하고 있었다. 윤하는 혼란스러웠지만, 동시에 어떤 새로운 감각을 느꼈다. 마치 자신이 물과 벽, 그리고 빛과 하나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시리의 의식을 통해 자신들이 단순한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고대 문명의 에너지로 만들어진 빛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빛의 형태로 터널을 벗어나 도시의 지하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 '오션프론티어'의 드론은 그들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시리는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뉴욕의 오래된 지하 통신망의 잔해와 얽혀 있는, 미지의 공간이었다. 공간의 중앙에는 고대 문명의 에너지가 흐르는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시리는 그들에게 몸짓으로 통신망을 가리키더니, 다시 한번 그녀의 심장을 가리켰다. 그리고 윤하의 유물 파편을 가리켰다. 윤하는 깨달았다. 시리는 자신들이 가진 고대 문명의 에너지를 이용해 이 낡은 통신망을 부활시키고, 빅터의 통제에서 벗어나 전 세계에 진실을 알리려 하는 것이었다. 인류에게 보내는 마지막 미지의 신호. 그리고 그 신호는 이제 곧 시작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