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빙하 아래의 비밀
시리는 그들을 빛의 형태로 만든 채, 뉴욕 지하 깊숙이 위치한 거대한 공간으로 이끌었다. 그곳은 물에 잠긴 채 폐허가 된 도시의 심장부와도 같았다. 낡은 지하철 터널과 하수도, 그리고 끊어진 전력선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고대 문명의 에너지가 미약하게 흐르는 곳이 있었다. 윤하와 선우는 시리의 도움으로 다시 육신의 형태로 돌아왔지만, 그들의 몸에서는 여전히 푸른빛이 희미하게 감돌고 있었다.
"방금 그건… 대체 뭐였죠?" 선우는 자신의 손바닥을 멍하니 바라보며 물었다. 그는 공학자로서 물리적인 법칙에만 의존해왔던 사람이었다. 빛의 입자가 되어 공간을 이동하는 경험은 그의 모든 과학적 지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윤하는 고대 유물 파편을 움켜쥐었다. "시리의 능력이에요. 고대 문명의 에너지로 우리의 몸을 변환시킨 거죠. 시리가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오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사용한 거예요."
강 박사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시리가 이곳으로 우리를 이끈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이곳은 뉴욕의 모든 통신망이 집결하던 핵심 지역이다. 낡았지만, 여전히 전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있을지도 몰라."
시리는 그들의 말을 들은 듯, 공간 중앙에 놓인 거대한 통신 장치의 잔해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손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오자, 잔해는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미약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선우는 즉시 자신의 스캔 장비를 꺼내 파동을 분석했다.
"놀랍군요… 시리의 에너지가 이 낡은 통신 장비를 고대 문명의 에너지 파동에 동기화시키고 있어요. 이대로라면… 빅터의 통신망을 우회해서 전 세계에 우리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 겁니다!" 선우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절망 속에서 드디어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강 박사는 윤하를 바라보았다. "윤하, 시리와 함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이 통신망은 그녀의 에너지를 통해서만 작동할 거야. 그리고 그녀의 언어는 네가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니." 윤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시리와의 교감을 통해 고대 문명의 경고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다. 진실을 전하는 것은 그녀의 몫이었다.
시리는 윤하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의 손이 맞닿는 순간, 유물 파편이 강렬하게 빛났다. 시리의 에너지가 윤하에게로 흘러 들어왔고, 윤하의 머릿속에는 복잡한 이미지와 감정의 파동이 다시금 뒤섞였다. 이번에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대 문명의 마지막 순간, 그들이 남기려 했던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다.
'에너지는 생명이 아니며, 생명을 지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생명을 봉인하려 했던 우리의 오만함이 새로운 생명체를 깨웠다. 그 생명체는 에너지를 탐하며, 그릇된 에너지는 곧 파멸의 길을 열 것이다.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할 길을 찾아라. 그렇지 않으면… 녹아내린 시간은 다시 반복될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바이러스를 멸망으로 이끌어야 할 적으로 규정했던 그들의 오만이 오히려 바이러스를 키웠다는, 쓰라린 자책과 함께 전해지는 마지막 지혜였다. 바이러스는 단순한 병원체가 아니라, 고대 문명의 오만함이 만들어낸 부산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류는 지금 그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윤하는 눈물을 흘리며 시리가 전해준 메시지를 강 박사와 선우에게 설명했다. 강 박사는 충격에 휩싸인 채 고개를 저었다. "바이러스를 이해하라니…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해법이로군. 빅터는 바이러스를 적으로 규정하고 무자비하게 에너지를 주입하고 있지. 그 결과는… 결국 인류의 파멸이 될 거야."
선우는 자신의 패드에 복잡한 에너지 회로도를 띄우며 말했다. "시리의 에너지는 그들과 바이러스를 연결하는 접점 역할을 할 겁니다. 우리는 이 에너지를 이용해 바이러스의 파장을 역이용하고, 빅터의 치료제가 얼마나 위험한지 전 세계에 알려야 해요. 하지만… 시리의 에너지만으로는 이 거대한 통신망을 활성화시킬 수 없을 겁니다. 도시의 심장부에 있는 고대 문명의 에너지원이 필요해요."
바로 그때, 시리가 윤하의 유물 파편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피라미드의 이미지를 그렸다.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에는 간절한 호소가 담겨 있었다. "다시 빙하 아래로 가야 해요." 윤하가 말했다. "고대 도시의 심장부로. 그곳에 있는 에너지 제어 장치를 이용해야만 이 모든 것을 막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들의 대화를 도청이라도 한 듯, 통신망의 잔해에서 빅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훌륭하군, 윤하 박사님. 시리의 능력을 이용해 통신망을 우회할 방법을 찾았다고? 하지만 늦었어. 이미 우리 오션프론티어는 빙하 아래의 고대 도시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도시의 에너지 제어 장치는… 이제 우리의 손에 들어왔지."
스크린에는 빅터의 비열한 웃음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그의 뒤로는 중무장한 병사들과 함께, 고대 도시의 심장부라 여겨지는 거대한 피라미드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진실을 덮기 위해, 그리고 고대 문명의 에너지를 독점하기 위해, 이미 최후의 수를 던진 것이었다. 윤하와 선우, 그리고 강 박사는 절망에 빠졌다. 그들의 희망은 이제 좌절될 위기에 처했다. 이제 그들은 다시 빙하 아래로 향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