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빛의 인도

5장. 사라진 존재들

by 몽환

윤하의 몸속으로 흡수된 시리의 에너지는 단순한 힘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대 문명의 모든 지혜와 기억이 응축된, 거대한 의식의 바다였다. 윤하는 눈을 감는 순간, 시리가 수만 년 동안 홀로 빙하 아래에서 지켜보았던 모든 것을 보았다. 문명이 번성하고, 바이러스가 창궐하며, 결국 봉인의 길을 택했던 비극적인 최후까지. 그녀의 몸은 푸른빛으로 빛났고, 그 빛은 이제 그녀의 일부가 되었다.


"윤하… 괜찮은 건가?" 강 박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작은 의료 장비가 들려 있었지만, 윤하의 상태는 그 어떤 과학적 장비로도 측정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윤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시리는… 사라진 게 아니에요. 제 안에 있어요. 그녀의 지혜와 함께…."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깊고 차분했다.


선우는 윤하의 변화를 보며 놀라움과 함께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녀는 이제 단순한 해양 고고학자가 아니었다. 고대 문명의 마지막 유산을 간직한 존재, 새로운 시작과 파멸의 열쇠를 동시에 쥐게 된 사람이었다. 그의 지식은 이런 초월적인 현상 앞에서는 무력했다.


"시리가 마지막으로 우리를 안내한 곳이 여기였죠." 선우는 지하 통신망의 잔해를 가리켰다. "오션프론티어가 우리를 추격하기 전에, 우리는 이 낡은 통신망을 이용해 남극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빅터가 우리의 모든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어." 강 박사가 말했다. "남극행 항공편은 이미 모두 통제되었을 거야. 어떻게 돌아갈 생각인가?"


윤하가 고개를 저었다. "시리의 에너지가 있으면 가능해요." 그녀는 손을 들어 자신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을 응시했다. 빛은 그녀의 의식에 따라 움직였다. "시리는 빛의 입자가 되어 공간을 이동하는 방법을 알려줬어요. 우리의 육체를 빛의 형태로 변환해서 이동하는 거예요."


선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도 안 돼…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이잖아?" "맞아요. 고대 문명은 물리적 세계와 에너지 세계의 경계를 허물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 힘을 사용하는 건 제 몸에 엄청난 부담을 줍니다. 그리고 이 에너지를 오션프론티어에게 들키지 않고 사용해야 해요." 윤하의 표정은 결의에 차 있었다. 그녀는 시리의 마지막 희생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강 박사가 몰래 준비해둔 소형 운송용 드론에 몸을 실었다. 드론은 낡은 지하 통신망의 틈새를 이용해 물에 잠긴 도시 밖으로 향했다. '오션프론티어'의 드론들은 여전히 도시 곳곳을 수색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지하의 미로 속에서 잠시나마 안전할 수 있었다.


"남극 기지로 바로 가는 건 불가능해." 강 박사가 말했다. "빅터가 우리의 위치를 추적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우리와 협력 관계에 있는 다른 기지를 찾아야 해." 윤하는 눈을 감고 시리의 의식과 연결을 시도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세계 지도가 홀로그램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그 지도 위로, 고대 문명의 에너지 흐름을 나타내는 푸른 선들이 움직였다. 선들은 북극과 남극을 잇고, 심해를 가로질러 인류의 주요 도시들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이게 뭐죠?" 선우가 놀라움에 물었다. "이건… 에너지 맵인가? 고대 문명의 에너지가 지구 전체에 연결되어 있었단 말인가?" 윤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리가 보여줬어요. 고대 문명은 지구 전체의 에너지 흐름을 제어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 에너지 흐름을 따라 이동할 수 있어요. 빅터의 통신망은 이 에너지 흐름의 일부에 불과해요. 우리는 이 흐름을 이용해… 남극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강 박사의 눈이 빛났다. "그렇다면 이 에너지 흐름을 이용해 진실을 알릴 수도 있겠군! 빅터가 통제하는 통신망이 아닌, 고대 문명의 에너지를 이용한 새로운 통신망!" 윤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안 돼요. 이 에너지를 통신망으로 사용하면, 바이러스가 활성화될 가능성이 커요. 시리가 경고했던 거예요. 에너지를 생명처럼 다루지 말라고."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들은 낡은 드론에 몸을 숨긴 채, 고대 문명의 에너지 흐름을 따라 남극으로 향했다. 윤하의 몸에서는 여전히 푸른빛이 희미하게 감돌았고, 그 빛은 그들의 유일한 길잡이였다. 그들은 빼앗긴 희망을 되찾기 위해, 그리고 시리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시 한번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들의 여정은 단순한 귀환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라진 존재들의 마지막 유산을 가지고, 새로운 위협에 맞서기 위한 처절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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