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빼앗긴 희망

5장. 사라진 존재들

by 몽환

뉴욕 지하 통신망의 잔해 속, 빅터의 비열한 웃음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나자 모두가 절망에 빠졌다. 그들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고대 도시의 에너지 제어 장치가 이미 빅터의 손에 넘어갔다는 사실에 윤하와 선우, 강 박사는 망연자실했다. 시리는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의 푸른 몸에서 빛이 희미하게 사그라들었다.


"말도 안 돼… 이렇게 빨리…." 강 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가 진실을 깨닫는 동안, 빅터는 이미 고대 문명의 유산을 완전히 독점하고 있었군. 그들은… 이 도시의 바이러스 확산을 방치하면서까지, 빙하 아래의 것을 탐냈던 거야."


선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우리가 그곳을 벗어난 후에 바로 탐사팀을 보낸 겁니다. 아마 저희가 남극을 탈출했을 때부터 이미 모든 것을 계획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들의 허를 찔린 것에 대한 분노와 함께,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 대한 무력감이 섞여 있었다.


윤하는 시리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떠올렸다. '에너지를 생명처럼 다루려 했던 우리의 오만함이 새로운 생명체를 깨웠다.' 그리고 '그들을 이해하고 함께할 길을 찾아라.' 시리는 인류가 멸망으로 치닫는 고대 문명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랐지만, 빅터는 그 모든 경고를 무시하고 오직 탐욕만을 좇았다.


바로 그때, 지하 통신망의 잔해에서 거대한 진동이 느껴졌다. 빅터의 홀로그램이 다시 나타나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숨바꼭질은 이제 끝났네. 윤하 박사님, 이선우 박사님. 이제 그만 포기하고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고대 문명의 지혜를 독점하려는 나의 계획에 동참한다면, 자네들의 목숨과 영예는 보장하겠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하 통신망의 잔해로 오션프론티어의 무장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이미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총구가 그들을 향했고, 탈출할 곳은 없어 보였다.

"어떻게…?" 선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들은 분명 빅터의 통신망을 우회하는 방법을 찾았었는데, 그마저도 빅터에게 감지된 것이다. 윤하는 시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리는 고개를 저으며, 빅터의 통신망이 아닌, 이 도시의 오래된 지반 자체를 가리켰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녀의 심장을 가리켰다.


"지반…?" 선우의 눈이 번뜩였다. "빅터가 우리의 통신망 해킹을 감지한 게 아니라, 시리가 우리에게 보낸 에너지 파동 자체를 추적한 겁니다! 이 도시의 지반 자체가 고대 문명의 에너지로 만들어져 있었던 거죠!"


그들의 대화는 이미 늦은 깨달음이었다. 병사들이 그들을 포위했고, 그들의 손에는 차가운 수갑이 채워지려 했다. 그때, 시리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윤하의 손을 잡고 강 박사와 선우를 자신의 뒤로 감쌌다. 그녀의 몸에서 다시 한번 강렬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은 병사들의 총구에서 나오는 총알을 막아냈고, 병사들은 충격에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게… 시리의 힘인가?" 강 박사가 경악했다. 선우는 시리의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 파동을 재빨리 분석했다. "시리가… 고대 도시의 에너지와 동기화하고 있어요! 도시 전체의 에너지를 끌어다 쓰고 있는 겁니다! 이대로라면…!"


선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빛은 그들 네 명을 감쌌다. 그리고 그 빛은 마치 거대한 파동처럼 주변을 뒤흔들더니, 그들을 투명한 보호막으로 감쌌다. 병사들은 그들을 향해 다시 총을 쏘았지만, 총알은 보호막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시리는 온 힘을 다해 그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마치 촛농처럼 녹아내리는 듯 보였다. 에너지를 과도하게 사용한 탓이었다.


"시리! 안 돼요! 당신의 몸이…!" 윤하가 소리쳤다. 시리는 윤하의 손을 더욱 강하게 잡았다. 그녀의 눈빛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단호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더니, 윤하의 유물 파편을 다시 가리켰다.

'나를… 너에게…'


그녀의 목소리가 윤하의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들려왔다. 언어가 아니었다. 어떤 감정과 의식의 파동이었다. 시리는 자신을 희생하여, 고대 문명의 모든 지혜와 에너지를 윤하에게 넘겨주려 하고 있었다. 그녀의 존재는 이 모든 것을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였던 것이다.


윤하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시리! 그러면… 당신은 사라져…." 하지만 시리는 이미 결심한 듯 미소 짓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는 슬펐지만, 동시에 평화로워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시리의 몸은 점차 빛의 입자가 되어 윤하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윤하의 손에 들린 유물 파편은 폭발하듯 빛났고, 그 빛은 그녀의 몸을 감싸며 마치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듯했다. 윤하는 머릿속으로 고대 문명의 모든 지혜와 역사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었다. 고대 문명의 마지막 숨결이자, 그들의 존재 자체였다.


"시리가… 사라졌어." 선우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들의 눈앞에서, 인류에게 희망을 보여주려 했던 미지의 존재가 스스로를 희생하여 빛이 되어 사라졌다. 강 박사는 윤하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이제 시리의 그것처럼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윤하… 자네가… 그녀의 모든 것을 이어받았군."


그 순간, 윤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빛은 그들의 주변에 떠 있던 '오션프론티어'의 드론들을 모두 무력화시켰다. 그녀의 힘은 이제 시리가 가졌던 힘과 동일했다. 고대 도시의 에너지를 제어하고, 빛의 입자가 되어 이동할 수 있는 힘. 하지만 그 힘은 그녀의 몸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었다. 윤하는 비틀거렸지만, 그녀의 눈빛은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시리가 자신에게 넘겨준 마지막 유산을, 그리고 그녀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했다.


"가요." 윤하가 말했다. "다시 빙하 아래로 가야 해요. 빅터가 고대 문명의 에너지를 완전히 장악하기 전에… 그들의 진짜 목적을 막아야 해요."


그들은 이제 시리의 희생으로 얻은 새로운 힘과 지혜를 가지고, 빅터의 탐욕이 만들어낸 재앙을 막기 위해 다시 한번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들의 여정은 이제 빼앗긴 희망을 되찾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 될 터였다. 그들은 사라진 존재들의 마지막 유산을 가지고, 새로운 위협의 심장부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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