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미지의 신호
혼란과 절망 속에서도 윤하와 선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뉴욕의 비상 연구소는 이미 감염자와 의료진의 비명, 그리고 사이렌 소리로 아수라장이었지만, 그들은 시리의 격리 시설 안에서 고대 유물 파편과 씨름했다. 시리가 윤하에게 보낸 미지의 신호, 그 파편적인 이미지와 감정의 파동 속에서 단서를 찾아야 했다.
"이 파동… 분명히 시리의 뇌파와 동기화되고 있어요." 강 박사가 새로운 분석 결과를 스크린에 띄우며 말했다. 그의 눈은 피로했지만, 새로운 발견에 대한 학자의 열정은 여전했다. "윤하의 유물 파편이 일종의 인터페이스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시리가 가진 고대 문명의 정보가 파편을 통해 윤하에게 전달되는 거지."
선우는 고대 문명의 에너지 파장에 대한 자신의 데이터를 강 박사의 것과 비교했다. "그렇다면 빅터가 만든 치료제는… 이 에너지 파장의 특정 부분을 변형해서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바이러스의 활동을 억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이러스의 성장 주기를 왜곡시키거나, 아예 바이러스가 고대 에너지를 흡수하도록 길들이는 거죠."
선우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빅터의 '치료제'는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의도적인 기만이었다. 인류를 살리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바이러스를 더욱 강력하게 만드는 동시에 고대 문명의 기술을 독점하려는 사악한 계획이었다.
윤하는 시리가 보낸 신호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되짚어 나갔다. 그 속에서 고대 문명인들이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들은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기 위해 도시의 심장부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봉인 시스템에 주입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을 치렀다. 그들의 최후는 절망적이었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실수를 후대에 전하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건 단순한 기록이 아니에요." 윤하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건 경고예요. 고대 문명은 바이러스와 자신들의 에너지가 결합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미 경험했어요. 그래서 그 에너지를 철저히 봉인하고, 바이러스를 도시와 함께 얼음 속에 가둬둔 거예요."
바로 그때, 신호의 마지막 부분에서 새로운 이미지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복잡한 구조의 에너지 회로도와 함께, 바이러스의 특정 약점을 나타내는 듯한 기호들이었다. 그리고 그 기호들 옆에는, 시리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듯 나타났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는 간절함과 함께, 한 줄기 희망이 담겨 있었다.
"이게… 바이러스의 약점? 그리고 고대 문명의 에너지 회로도인가?" 선우가 윤하의 패드를 들여다보며 흥분했다. 지반 공학자로서 그는 건축물과 에너지 흐름에 대한 본능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이 회로도를 해독할 수 있다면, 우리는 바이러스의 약점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이 왜 바이러스를 봉인하는 데 실패했는지도…."
하지만 기쁨도 잠시, 비상벨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뉴욕 시 전체에 내려진 최상위 경고였다. 강 박사의 통신 장치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사님! 오션프론티어에서 전면적인 도시 통제를 시작했습니다! 바이러스 확산을 명분으로 모든 통신망을 장악하고, 시민들을 강제로 격리 시설로 옮기고 있습니다!"
빅터는 자신들의 거짓 치료제를 이용해 전 세계를 장악하려 하고 있었다. 그들의 진짜 목적은 바이러스 퇴치가 아니라, 혼란을 이용한 권력과 부의 독점이었다. 그들은 이미 고대 문명의 유산을 차지했고, 이제는 그 유산을 이용해 인류를 통제하려 했다.
윤하와 선우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결의가 빛났다. 그들은 더 이상 진실을 숨길 수 없었다. 시리가 보내준 신호, 고대 문명의 마지막 경고를 인류에게 알려야 했다. 바이러스의 진정한 위험성과 빅터의 기만을 폭로하고, 파멸을 막을 마지막 희망을 찾아야 했다.
"우리는 이 정보를 외부에 알려야 해요." 윤하가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빅터가 모든 통신망을 장악했어요." 선우는 시리가 보낸 에너지 회로도를 다시 한번 살폈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고대 문명의 에너지 파장은 우리가 아는 어떤 통신망과도 달라요. 만약 우리가 이 에너지를 역으로 이용해서… 빅터의 통신망을 우회할 수 있다면…." 그의 머릿속에서 복잡한 공학적 계산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강 박사는 두 젊은 학자의 눈빛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가능할지도 몰라! 시리가 가진 에너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그 파동을 해독하고, 새로운 통신망을 구축하는 거야. 시리와 윤하의 연결이 핵심이 되겠군."
그 순간, 격리 시설의 유리벽 너머에서 시리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녀는 두 손을 모아 윤하의 유물 파편을 가리켰다. 파편은 이제 단순히 빛나는 것을 넘어,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고동치고 있었다. 시리의 푸른 눈동자는 강렬한 의지를 담고 있었고, 그것은 인류에게 보내는 마지막 미지의 신호이자,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한 줄기 희망이었다.
인류의 운명을 바꿀 중요한 단서와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이 열리는 동시에, 빅터의 본격적인 도시 통제가 시작되는 혼돈의 시작이었다. 이제 윤하와 선우는 시리의 미지의 신호를 해독하고, 고대 문명의 지혜를 빌려 인류를 구원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