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18. 12. 6 목

by 홍석범

로미오와 줄리엣을 관람했다. 이번에도 역시 아마트리아인과 포겔이었다. 둘이 춤을 출 때 정말로 사랑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둘의 호흡이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파드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안무의 강약이다. 그 힘 조절을 통해 그들이 느끼는 여러 감정의 고조가 효과적으로 전달됐다. 춤을 눈과 귀로 따라가면서 내 내부도 쪼그라들거나 펼쳐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움직임이 정교하게 통제됐지만 동시에 자유로워 보였다. 아마도 부드러운 호흡과 연결들에 의해.






2015. 12. 6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


인조잔디 정지공사 소장님과 부장님에게 나는 벌써 두 번 점심을 얻어먹었다. 둘 모두 부산 출신인데 특히 공수부대 대위로 전역한 부장님은 다부진 체격이 어렴풋 헤밍웨이를 연상시킨다. 둘은 정문을 지날 때마다 헌병들을 보고는 제대로 된 게 한 놈도 없다고 버럭 한다. 그들은 내게 번호를 알려주며 부산에 놀러 오면 꼭 연락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부장님은 내 또래의 딸과 가끔씩 소주를 마시며 올해 수능을 본 아들은 글재주가 있는 듯싶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본 뒤로 나를 ‘수재’라고 부른다. 동생인 소장님은 불같은 공수부대 출신의 부장님보다는 유순하고 스스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단 걸 좋아한다. 그는 나를 데리고 BX에 가서 먹고 싶은 걸 고르라고 한 적이 있는데 내가 작은 과자 한 통을 들고 빨리 나가려고 하자 부드러운 게 좋다며 가장 큰 카스타드 한 봉지를 들고 계산대로 갔다. 그는 일을 할 때도 수시로 과자를 먹는데 차 뒷좌석에는 항상 수많은 과자 박스와 봉지들이 널려 있다. 부장님은 그 차를 운전할 때마다 빌어먹을 쓰레기통이라며 투덜거린다. 얼마 전 생일이었던 소장님에게 밖에서 사 온 과자 한 박스를 선물로 주자 그는 멋쩍게 웃었다. 그와 항상 함께 다니는 굴삭기 기사님은 언제나 내게 어깨동무를 하고 바짝 붙어서 흔들흔들 몸을 흔들며 걷는 버릇이 있는 충주 토박이다. 그는 말을 웅얼웅얼하게 하고 투정하듯 말끝을 올렸다 내리는데 내가 술을 조금 줄이시는 게 좋겠다고 잔소리를 하면 항상 ‘그런 거야?’하고 되묻는다. 어제는 동창회에서 별 볼 일 없는 동생 한 놈이 하도 깐죽거려서 술을 계속 퍼마셨다고 한다. 그는 나를 양품부로 데려가 쓸 데도 없는 신형 벨트를 4개나 사서 그중 하나를 나눠줬다. 이미 양품부 사장님을 붙잡고 자신의 중국산 벨트를 뒤집어 보이며 한참 하소연을 한 뒤였다. 그는 지나가는 길이면 길 한가운데에 굴삭기를 세우고 나에게 먹고 싶은 게 있는지를 묻는데 내가 별생각 없이 ‘바나나맛 우유요’라고 말하면 우유가 없었다며 게토레이나 베지밀을 사 온다. 그는 일이 끝나면 다시 굴삭기를 몰고 시내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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