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19. 1. 21 월

by 홍석범

서울에서 텔아비브를 거쳐 다시 슈투트가르트로. 사방에 짐이 널브러져 있고 엄마가 개어준 옷들이 흩어져 있다. 어젯밤 4주 동안 냉장고 속에서 숙성된 치즈와 베이컨을 넣고 대충 스파게티면을 볶아먹었는데 페페론치노 때문인지 눈을 뜨자마다 설사를 두 번이나 했다. 플로리안에게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스튜디오에 가지 않았다. 딱히 가지 않을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저 시간이 필요하다고, 오랫동안 샤워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낭만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혼란과 정신착란증, 조울병과 망상으로 가득 차 있다는 데서 인생이란 꿈과 다를 것 없고 그래서 때때로 전혀 실감 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용희처럼.






2016. 1. 21



오늘 아침 언덕을 올라가는데 세찬 바람이 불어 가장자리에 몰려 있던 낙엽들이 순식간에 데굴데굴 구르고 통통 튀기며 도로 한복판으로 흩어졌다. 큰 바람이 웅 소리를 낼 때마다 바싹 마른 잎사귀들은 확 퍼지고 다시 달려가기를 반복했다. 그걸 보며 누군가 마침내 술래의 등을 탁 쳐서, 와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사방으로 뛰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죽자 살자 도망가는 까맣고 쪼글쪼글한 잎사귀들 하나하나가 각각 조그만 생명들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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