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19. 1. 24 목

by 홍석범

2016. 1. 24



정합성의 원리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모든 부분들이 한 곳을 향해 맞춰져 가는 것


무대가 주어지고 이야기가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자체가 영화가 되려고 한다. 이건 칸이 존재를 표현되고자 하는 의지라고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하야오는 언제나 영화는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 위’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건 건축물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상식 안에서는 해낼 수 없으며 계속적으로 자신이 그려내는 것의 뜻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영화, 혹은 건축물, 혹은 되고자 하는 그 무엇인가가 우리를 이끈다. 그때 자신의 사상, 심정의 기초가 되어 있는 것 안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일상뿐만 아니라 세상의 움직임들 전부가 들어가게 된다. 좀체 통합되지 않은 상태로. 그것에 가까워지기 노력하면서 자신이 그려내는 것에 이끌려가야만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구현되는 하나의 세계는 결국 그 안의 움직임들이 하나의 기초에서 자연스럽게 발견된 것들이기 때문에 필연적인 하나의 상을 가지고 있다. 남에게 자신의 꿈을 말할 때, 자기본위로 말하지 않고 전하기 위해서는 그 자체를 하나의 세계로 완성해야만 한다. 크리스마스트리는 나무가 없으면 안 된다. (51)



예술은 우리에게 동물적 활력의 상태를 상기시킨다 ─ 생명감의 고양이며 생명감의 자극제이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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