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19. 1. 23 수

by 홍석범

2016. 1. 23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에게서 근사하다라는 단어를 처음 배웠고, 그 단어를 참 좋아하게 됐다. 그 밖에도 대단한, 시시한, 멋대로와 같은 소박하고 솔직한 표현들. 그의 말들을 머릿속에서 되풀이하면서 계속 그 태도를 닮고 싶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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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슈디가 한밤의 아이들을 통해 목표했던 건 결국 니체의 다음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이란 어째서 오류이며 개별적인 모든 존재는 어째서 오히려 직선적인 과정 전체인지를 이해하면…

이 소설은 훨씬 더 짧고 설득력이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백년의 고독에 비견된다는 뉴욕타임즈의 서평은 다소 나이브하고 미심쩍다. 죽음을 머리 위에 둥둥 떠 있는 석류로 묘사한 것 외에 몇몇 초현실적 문장들 말고는 딱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없다. 마지막 300페이지는 각 단락의 아무 문장이나 하나씩 읽고 넘어갔다. 그때 나는 작가의 마스터베이션에 너무 질린 상태여서 뉴욕타임즈에 그 빌어먹을 서평을 쓴 작자는 이 책을 읽지 않았거나 백년의 고독을 읽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백년의 고독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모든 동기들, 모든 생명들이 하나의 정합적인 역사로 소급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으로 건축적인 파토스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바로 그 안에서 각각의 인간들은 어떠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이 회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문학의 힘이라고 느꼈다. 분명 루슈디는 마르케스를 따라 하고 싶었겠지만 단순한 나열과 영원히 회귀하는 완전한 구조 사이에는 심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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