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호봇으로 가는 기차 안. 그물이 씌워진 오렌지 나무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아니면 폐허 같은 이 도시를 장악한 들풀거미들의 제국일까?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의 Wrapped Trees가 생각났다.
움직임을 통해 보는 것, 그것은 시간에 대한 직관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미야자키 하야오를 선망해오면서 내가 받은 영향은 분명 이미지들 이상이며 어떠한 태도이다. 그것이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애니메이션은 시간을 통해 움직임을 분할하고 재편성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생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드러난다. 이 생명은 2격의 생명, 즉 무엇인가의 생명이 아닌 니체가 말했던 단 하나의 활동으로서의 생명이다. 건축가는 반대로 이 움직임을 모아 사물 안으로 농축시켜야 한다. 사물들은 움직임으로 꽉 차 있다. 우리는 그 진동이 공명하고 증폭될 수 있도록, 비로소 그것이 감지될 수 있도록 일종의 특수한 좌표를 지정해 주는 것이다. 공감각적 심상의 확장. Correspondences. 줌터가 말하는 분위기의 조건, 사물에 대한 사랑, 이 모든 것이 키키의 한 장면 속에 전부 들어 있다. 애니메이션과 건축의 애니미즘. 이 두 예술 분과의 연관성 속에 분명 핵심이 들어 있다.
하야오는 그 세계를 정확히 알아야만 그릴 수 있다고 했다. 마치 보자기가 펼쳐졌다 묶이는 것과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