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19. 1. 18 금

by 홍석범

카페 푸아는 이곳에서의 집이 됐다. 만샤프를 먹었다.


호스텔의 침대에 누우면 복도나 옆방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층 침대는 크기가 작아 어쩐지 요람 속에 있는 것 같은 아늑한 기분이 들게 한다. 천정이 엄청나게 높고 큰 창으로부터는 푸르스름한 빛이 들어온다. 나는 8시만 되면 고스트처럼 이불 밑으로 사라졌다.


어제 기차에서 S가 준 소설책을 조금 읽었다. 나처럼 어딘가 지적 허영심이 강한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독자들은 그를 절제됐고 담백하다고 말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쓰는 것은 그가 작가라는 데 대한 일종의 시기심일까? S의 말대로 그가 다른 젊은 한국 작가들처럼 쓰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건 어쨌든 멋진 일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젊은 한국 작가들이 어떻게 쓰는지 알지 못한다.



예루살렘에서의 경험을 잊을 수 없다. 감람산 자락에서 파란 천을 씌운 관 주위에 서서 장례를 치르고 있는 유대인들이 보였다. 입속으로 들어온 모래 알갱이가 씹혔다. 거대한 벽 앞에서 몸을 흔들며 기도하는 사람들. 그들은 기도문을 외우며 책장을 넘기거나 벽을 어루만졌다. 동굴 속은 기도서들과 말소리로 꽉 차 있다. 보르헤스가 읽히지 않는 책들은 죽어 있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그곳의 책들은 전부 살아 있고 거의 스스로 소리를 내는 것 같다. 몸을 흔드는 사람들은 그 소리들이 잠깐 통과하는 작고 연약한 울림통에 불과했다.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부인과 딸과 함께 있던 한 남자에게 물었다. 이곳이 그가 묻혀 있는 곳입니까? 그렇지요. 저는 어쩐지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그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당신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세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결국 나는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에 그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입구로 몰려들었고 물살이 센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그 사이를 통과해갔다.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조끼에 잉크가 떨어진 것처럼 노란 점들이 생겼다. 모래비라니. 루고네스의 이야기 속에나 나올 법한 현상이다. 빗방울이 투명해질 때까지 십자가와 히브리어가 새겨진 돌기둥 옆에 서 있었다. 큰 천막이 펄럭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곧 사방이 잠잠해졌다.






2016. 1. 18



강풍주의보.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아주 간혹 거의 황홀할 정도의 정적과 고요함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때는 이 큰 공간, 사방이 유리로 둘러져 있는 이 공간뿐이다. 나무들이 바람 속에서 헝클어졌다 다시 모아지는 모습이 무성영화의 한 장면 같다. 나는 한가운데로 가 앉는다. 삼십 분, 운이 좋으면 거의 한 시간까지도 고요함이 이어진다. 그 고요함의 정체는 아마도 잠깐 모습을 드러낸 공간의 영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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