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가 끝났다. 그냥 이것저것 나열하는 데 그쳤다. 지금으로서는 더 손을 대도 안 좋아지기만 할 뿐이다. 사실 이번 발표가 중간발표였어야 했다. 그래도 어쨌든 일단 끝났다는 게 좋다. 텔아비브를 다녀온 이후로는 단순노동만 했다. 머리를 전혀 쓸 수 없었다.
평소대로라면 가슴 왼쪽 호주머니에 있어야 할 펜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카프카가 쓴 글을 읽을 때는 어쩐지 편두통이 시작되고 약간 광적인 상태가 된다. 카프카라는 존재의 내면에는 강력한 모순이 있다. 그에게서 가장 빛나는 것은 순수함이며 바로 그런 의미에서 그는 직선적이고 그리스적이다.
파혼한 직후 그가 쓴 편지들에서는 비로소 자유로움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스스로의 존재로 돌아간 듯하게 보인다. 그가 사랑을 준비하고 행하는 태도는 놀랍도록 직관적이고 맹목적이다. 펠리체는 결국 그의 글쓰기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를 놓아버리지 않았다.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는 것보다 이 둘이 주고받은 편지를 몇 장 읽어보는 것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미열이 있지만 몸살은 아니다. 야간 기지 방어를 선 이후로 손끝이 갈라져 양말을 신을 때마다 따끔거린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문득씩 레버넌트의 흰 장면들이 떠오른다. 창가에 서 있는 창백한 어린 왕과 말의 배를 열고 나오는 죽었던 자의 얼굴이 겹쳐졌다. 놀라운 인간의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