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을 마중하기 위해 뮌헨에 다녀오다.
일찍 도착해 하우스 데어 쿤스트에 들렀다. 정적 속에서 정지해 있는 듯한 건물. 나치들이 지은 예술의 집은 놀랍게도 모든 공습을 피한 채로 그렇게 역사 속에 박제되어 있다. 마땅한 전시가 없이 텅 비어 있는 그곳이 좋았다. 지하 벙커의 흰색 복도와 창문이 없는 방들 속에서 상영되는 온갖 괴상한 영상들은 어딘가 서대문 형무소를 떠올리게 했다. 예술은 모든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걸까? 아마도 그 반대일 것이다. 예술은 언제나 궁핍 속에 있다.
작은 다리 밑에서 전신수영복을 입은 남자 네다섯 명이 서핑을 하고 있다. 좁은 실개천 위로 콸콸 쏟아지는 물은 얼음처럼 차가워 보였다. 그들을 구경하면서 혈관 속까지 시원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꺼운 폴리우레탄 수영복 사이로 빼꼼히 나온 얼굴의 양 볼은 발갛고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김이 퍼져 나온다. 기묘하게도 겨울 속에 여름이 있고 여름 속에 겨울이 있다.
훈징어에서 P와 만나 같이 점심을 먹었다. 그녀는 본에서 만났던 윌리엄과 썸을 타는 중이라고 했다. P는 앞으로 이곳에서 10년 이상 있을 계획이고 아마도 이곳에서 만난 누군가와 결혼을 할 것이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그런 것들은 나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분명 나에게는 현실 감각이 어느 정도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현실 감각이라는 것 자체를 믿지 않는다.
교수님은 나를 보자 왁 소리를 지르고는 주저앉을 뻔했다. 모스크바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고 모든 일들이 다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호텔까지 가는 택시 안에서 교수님은 약간 충혈된 눈으로 조잘조잘 끝없이 얘기를 했다. 점점 밝아지는 표정을 보면서 오길 잘했다고 느꼈다.
미술과 문학을 비교한 첫 번째 사람은 이 두 예술로부터 비슷한 영향을 느낀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였다. 그는 양자 모두 우리에게 없는 가상의 것을 지금 눈앞에 있는 것처럼 현실로 보여준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둘 모두 환상을 불러일으키며 그 환상은 쾌감을 준다.
두 번째 사람은 이 쾌감을 분석해서 그것이 미술이나 문학 공히 동일한 원천에서 나온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가 맨 먼저 물체 대상들로부터 그 개념을 이끌어내는 아름다움은 보편적인 법칙을 가지고 있고, 그 법칙은 행동과 생각 그리고 형식 등 여러 가지 것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 보편적 법칙들의 가치와 소속에 대해 깊이 생각한 세 번째 사람은 어떤 법칙들은 미술에, 그리고 다른 법칙들은 문학에 더 많이 적용된다는 것을, 다시 말해 후자의 경우에는 문학이 미술을, 그리고 전자의 경우에는 미술이 문학을 설명과 본보기로써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첫 번째 사람은 애호가, 두 번째 사람은 철학자, 세 번째 사람은 예술비평가였다.
애호가는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니콜라이, 철학자는 모제스 멘델스존, 비평가는 레싱 자신이다.
고대 미술가들은 격정들을 전적으로 피했거나 아름다움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낮은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아가멤논이 얼굴을 가린 것은 티만테스가 아름다움을 위해 바쳤던 희생이다. (36)
시인은 모든 사건을 발단에서 시작하여 모든 가능한 변화를 거쳐 종결로 이끌어간다. 이 변화들 하나하나가 미술가에게는 완전한 별도의 작품이 되겠지만 시인에게는 단 하나의 서술로 충분하다. (48)
시인은 아름다운 외형을 등한시한다. 시인에게 옷은 옷이 아니다. 옷은 어떤 것도 가리지 않는다. 우리의 상상력은 어디서나 투시한다. (73)
통상적인 것은 고대인들이 매우 경시하는 것이었다. 고대인들은 예술의 지상목표가 그들로 하여금 통상적인 것을 완전히 무시하게 한다는 것을 느꼈다. 아름다움의 예술이 필요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74)
미술가들이 표현하는 신과 영적 존재들은 시인이 필요로 하는 신 및 영적 존재들과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