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19. 2. 7 목

by 홍석범

2016. 2. 7



카프카에게 끝까지 문학과 삶은 병존할 수 없었던 걸까? 꽤 오래전부터 내 수첩 표지에는 ‘우선 이상적 문학을, 나중에는 이상적 삶을 시도할 것’이라는 쪽지가 붙어 있다. 언젠가 새벽 당직을 서면서 읽었던 니체의 문장으로 그것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그보다도 언젠가는 알게 되기를 희망하면서 붙여놓은 것이다. 이미 쪽지는 너덜너덜해졌고 윤곽이 닳은 글자들은 어딘지 모르게 물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지만 수첩을 펴기 전 이 문장을 읽는 것은 단지 막연한 하나의 습관이 됐을 뿐이다. 카프카가 선고를 쓴 뒤 그의 삶이 그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의 내부에는 세계의 한 면모가 들어 있다. 창작되는 것은 다름 아닌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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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표현주의에 대한 비판 - 움직임을 희생시키는 것

지나치게 회화적인 묘사는 ‘드높은 존재를 인형으로 만드는 것’이다.

시는 움직임을 표현하므로… 건축은 미술에서 시로의 이행이다.

건축의 부속물은 알레고리적 부속물이 아닌 시적 부속물이 되어야 한다.


호메로스가 잠의 신에게 부여할 수 있었던 의미심장한 상징들은 그가 잠의 신을 죽음의 쌍둥이 형제로 만드는 단 하나의 묘사보다 훨씬 더 잠의 신을 완벽하게 특정하지 못했고… (116)


우리가 시적 그림이라고 부르는 것을 고대인들은 상상(phantasia)이라고 일컬었다. 그리고 우리가 환상, 시적 그림의 눈속임이라고 부르는 것을 고대에는 명백함, 생생한 표현(enargeia)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바와 같이 어떤 사람은 ‘시적 상상은 명백함 때문에 깨어 있는 자들의 꿈이다’라고 말했다. (136)


헤밍웨이는 생물이 있어야만 쓸 수 있다고 했다. 생물은 움직임이다.


물체들로 이루어진 건축에서의 시적인 묘사

포프는 명시적으로 시인이란 이름값을 하려는 자는 가급적 일찍 묘사벽을 떨쳐버릴 것을 요구하고…


즉, 그는 감정이 드문드문 박힌 일련의 그림들로부터 그림이 드문드문 박힌 일련의 감정들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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