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19. 2. 11 월

by 홍석범

더 페이버릿. 베르메르의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영상을 보면서 두 시간 내내 그 미적 효과가 초래한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철두철미하게 심미적인 경험이다. 랍스터의 우울하고 절제된 미학이 시대극의 미장센을 통해 더욱 기묘하고 극적인 것이 됐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감탄스러운 빛과 디테일들에 도리어 이야기를 따라가는 집중력이 계속 흐트러졌다. 그러나 가장 눈부신 것은 올리비아 콜먼의 연기였다.


배우들의 인터뷰 중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배우들과 캐릭터의 배경이나 설정에 관해 거의 얘기를 나누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배우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말만을 가지고 일단 씬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들이 무엇인가를 하면 감독의 디렉션은 그저 예스 혹은 노, 가끔씩 아주 만족했을 때 웃는 정도가 전부다. 레이첼 바이스는 우리는 그가 그의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라는 말을 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영화가 완성되어 들어 있었을 것이다. 감독, 지휘자, 그리고 물론 건축가 역시 독단적인 직업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영화도 음악도 건물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품이 뛰어날수록 청중들은 장인의 천재성과 동시에 그의 고독을 느낀다.






2016. 2. 11



기하학은 (자연이 아닌) 인간의 언어다. (81)

- 정신의 표현, 질서의 시작?


비행기는 제대로 제기된 문제에서만이 그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 사례다. 새처럼 날고 싶다고 원하는 것은 문제를 정확하게 제기한 것이 아니다. (127)

- 주택의 문제는 아직 제기된 바 없다!


그들 사이의 연관성은 실제적이거나 서술적인 것과는 무관하다. 그것들은 우리의 마음이 빚은 수학적 창조물이자 건축의 언어다. 움직이지 않는 재료들을 사용하고 다소 실용적인 조건들에서 출발하여 당신은 나를 감동시키는 어떤 관계를 만들어내었다. (163)


빛은 반사하는 벽들 사이에 있을 때 더욱 강렬해진다.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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