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19. 2. 14 목

by 홍석범

2016. 2. 14



<응집된 존재로서의 집>


라인 빌라의 벽이 두꺼워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들판 위의 성채, 보루, 바위이기 때문이다. 사방으로부터 바람이 불어닥치고 한낮에는 태양이 작열한다. 겨울에는 눈보라, 여름에는 비를 머금은 태풍이 휘몰아친다. 통나무를 쌓아 올린 숲속 오두막의 벽은 자신의 조상들인 다른 나무들과 함께 숨을 쉬지만 들판에 홀로 세워진 성채의 벽은 작은 총구들을 제외하고는 큰 돌과 흙으로 단단하게 차 있다. 그것은 내부로 파고드는 집이며 안락하고 내밀한 잠을 자는 사막거북과 같은 집이다.


그러나 엄격하게 통제된 통로를 따라 내부로 들어가면 그 안은 섬세하고 조각적이며 여유롭다. 모든 창문들은 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고 각각의 공간은 빛에 의해 부드럽게 감싸여 있다. 더 이상 창문은 투명성에 대한 맹신으로 인해 쇼윈도로 전락해버린 처량한 유리판이 아니다. 이곳의 창문은 내부에서는 외부를 전적으로 드러내지만 외부로부터는 내부를 비밀히 모자이크화한다. 이때 내부의 모든 벽은 빛의 경로이자 반사판이다. 빛의 인상은 끊임없이 중첩되고 대형 유리판이 없이도 내부는 점점 밝아진다. 벽은 그 위에 어떠한 그림이 걸려 있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보고 싶은 것이다. 반질반질한 바닥은 맨발로 걷고 싶고 창문은 열어 보고 싶으며 계단의 난간은 계속 만져보고 싶은 것이다. 공간은 다른 기능품 내지는 조형품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도 그것 자체로 이미 충만하고 흥미롭고 살고 싶다. 벽과 창문은 최고도로 사물이 된다. ‘공간은 행동을 부르고, 또 그 행동에 앞서 상상력이 활동한다.’



<수직적인 존재로서의 집>


라인 빌라에는 네 개의 계단이 있다. 이 네 공간은 각각 다른 세계로의 이행을 담당한다. 집은 ‘수직의 방향에서 여러 다른 모습들로 분화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계단이다. 네 계단은 네 종류의 다른 빛으로 차 있다. 네 계단은 각기 다른 움직임을 요구하며 각기 다른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경험 속에서 지어진다. 계단은 공간들이 모이는 접점이자 다시 방사되어 펼쳐지는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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