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이 짐 문제로 잠시 독일에 돌아와 있는 동안 나를 방문했다. 작년 바이마르 이후 일 년 만에 만난 것이다. 많은 얘기를 나눴고 그에게 감정적인 위로보다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인간은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거의 언제나 감정에 휘둘려 대처한다. 실질적인 무엇인가는 종종 우리에게 위압감을 주기 때문이다.
목록 작성의 중요성. L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고 했다. 잠깐이었지만 길 위에 허망하게 앉아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갈 길이 너무 멀 때 근시안적으로 사는 것은 좋은 전략이다. 그것은 머리가 단순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음이 단순해지는 것이다.
맥주를 마시다가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일기를 쓰는 것으로 이어졌다. 나는 다소 장황하게 떠벌렸는데 L은 진지하게 들으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의 태도에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내가 흥분해서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는 중에 내 눈빛에 대해 어떤 말인가를 했는데 나는 똑같이 그 순간에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묘하게도 그가 나를 좀 더 잘 알게 되었다고 느꼈다.
그가 돌아간 후에 작년 일기책을 아무렇게나 펼쳐 조금 읽어봤다. L이 나에게 해준 말은 나로서는 조금 놀랍고 신기한 것이었지만 굳이 이것을 책이라고 부른다고 해도 그것은 별로 가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오후에 조금씩 비트겐슈타인을 읽고 있다.
일주일 전부터 새로 시작한 하나의 습관. 저녁을 먹고 한 시간 동안 공원을 세 바퀴 걷는다. 이 산책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수업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해야 할 말들을 연습한다. 밤에는 도서관에서 팡세를 읽는데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일종의 의식일 뿐이다. 이 모든 활동 중에 나의 정신은 항상 어딘가로 향해 있다. 마치 강박적으로 무엇인가를 붙잡으려는 것처럼. 자기 전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침대 위에 앉아 있는 삼십 분 동안 나는 내 머릿속이 비로소 조용해진 것을 들으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그 긴 시간 내내 지치지도 않고 깨어 있을 수 있었던 걸까? 나는 부단히도 매 순간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