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19. 4. 15 월

by 홍석범

내가 이해하기로 데리다는 거리에 의해 생겨나는 존재의 흔적을 유령이라고 불렀다. 그는 기술의 발전은 유령들의 활동을 촉진시킨다고 했는데 단적으로 시네마토그래피는 유령들의 예술이다. 그는 유령의 춤이라는 단편 영화에 출연해 자기가 자기 자신의 유령에게 완전히 정복당하는, 아니 자신의 목소리와 몸을 자신의 유령에게 온전하게 내주는 경험에 대해 얘기한다. 사실 카메라가 그를 찍고 있는 그 순간 그는 이미 유령으로서 말하고 있었고 그 자기 인식은 토마스 만이 이 이야기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라고 썼던 것과 같은 맥락의 것이다. 토마스 만은 한스 카스토르프가 자신의 유령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독자인 우리들에게 시간의 교차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 그것은 세 차원이 겹쳐지고 거리가 사라지면서 작가와 독자는 유령을 공유하게 되고 결국 하나의 유령이 되기 때문일까? 찰리 카우프만이 시넥도키 뉴욕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썼을 때 그는 그것이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폭로된 우리는 사실 우리 다사다난한 존재들이 거대한 대명사 유령을 위한 제유일 뿐임을 어렴풋하게 느꼈다.



Ghost Dance



Always four people watching

their presence slipped into language

but difficult to talk

no one is listening

fascinating gaze

maintaining distance

the art of ghosts.


Always four people watching

their home is a hole

afraid to look

dancing in light

unaware of their own form

all sounds at a same distance

and they disappear

disapp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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