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19. 4. 19 금

by 홍석범

여름의 첫날 같았다. 기온 23도. 부활절 휴일에는 기차도 운행하지 않는 걸까? 혹은 내가 소리를 듣지 못한 걸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은 거의 하루 종일 창문을 열어 놓았고 바람소리와 새소리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 소리들이 나에게 벌써 여름이 가까이에 있음을 알려주었다.


어제 밤 영화를 보다가 침대에 누웠는데 그대로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약간 몽롱한 상태로 베를린 천사의 시를 마저 봤다. 대사가 마음에 들었고 한트케를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천사들에 대해 몇 가지 메모를 해두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무지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우리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이 가능할까? 그들이 듣고 있다는 사실이? 천사들은 우리 인간들에게서 언어를 배웠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이 있고 우리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 방향이라고, 우리가 말을 함으로써 천사들이 듣게(있게) 된다고 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유령의 춤 서두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Their presence slipped into language. 기록하는 존재들인 천사들에게는 도서관이 집이리라. 이것은 그럴듯한 은유이다. 포츠담 광장을 찾아 헤매던 늙은 시인이 호메로스라는 사실을 엔딩 크레딧을 보고 난 다음에야 알았다. 보르헤스의 죽지 않는 인간과 그가 언젠가는 서사시가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빔 벤더스는 분명 이 이야기를 읽었을 것이다.






2016. 4. 19



나는 내일 이곳을 떠난다. 아침에 서면 신고를 하고 오후에는 공원을 산책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버린 건지 확실하지 않다. 샤워를 하고 손톱을 깎았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사이에 조팝나무 가지를 끼워둔 것이 떠올라 찾으러 갔다. 장미와 쏙 빼닮은 아주 작은 봉오리들이 오므려진 채로 말라 있다. 밤까지 도서관에 있었지만 아무것도 읽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면서 버릴 것들을 버렸다. 내일 아침에 이곳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공원을 한 바퀴 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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