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19. 4. 18 목

by 홍석범

프라우 리는 내 뒤로 유리문을 닫으라고 했다. 두 번째다. 저번에는 전형적인 한국 학생들과 생각하는 게 똑같다고 했다. 모욕적인 말이었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어찌 됐든 그녀의 화법에 조금 익숙해진 상태이기도 했다. K가 이 말을 들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능글맞게 웃으면서 분명 일말의 진실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는 억울한 말이었다. 전혀 미학적인 계제도, 그렇다고 설계 전반에 대한 계제도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막달레나와 후버 교수와 나눴던 대화를 그 순간에 내가 다시 곱씹어 봐야만 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이번에는 도시 공간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하다며 혀를 찼다. 역시나 일반화는 그저 무시하자고 생각했다. 그녀가 요구하는 것은 선전용 이미지였고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텐데요라고 소심하게 말했지만 프라우 리는 그 말을 듣지 못했거나 무시했다. 그녀와의 대화에서 주제는 항상 묘하게 변질된다. 그녀는 나를 아티스트라고 불렀다. 내 책에서 봤던 인상적인 색들이 어디로 갔냐고 물었다. 나는 그녀가 나를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나는 아티스트가 아니다. 최소한 그녀가 생각하는 아티스트는 아니다. 슈무츠 교수가 나를 미니멀리스트라고 불렀을 때 나는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답답했고 내가 무능력하게 느껴졌다.






2016. 4. 18




내가 나의 존엄성을 찾아야 하는 것은 결코 공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의 생각을 조절함으로써이다. 내가 더 많은 땅을 소유한다고 해서 더 우월한 자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공간에 의해서 우주는 나를 포함한다. 그리고 나를 하나의 점인 것처럼 삼켜버린다. 그러나 나는 사고에 의해서 우주를 포함한다.


파스칼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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