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하게도 노트북에 콜라를 쏟아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꺼져버린 노트북을 뒤집어 흔들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건 전혀 현명한 행동이 아니었던 것 같다. 밤새 노트북을 엎어놓고 말리는 중에 미세하게 낑낑거리는 기계음이 들리는 듯했다. 무엇인가가 죽어가는 소리.
아침에 근처 수리점에 갔지만 기술자가 없어 월요일은 돼야 뜯어볼 수 있다고 했다. 망연자실한 상태로 돌아왔다. 노트북이 없는 며칠간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독서와 음악 듣기, 일기를 쓰는 정도다. 이참에 조금 더 건강한 생활 패턴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독서의 역사에는 카프카가 작가이기 이전에 스스로 독자로서 글을 쓴 것이 그의 작가적 기교를 훼손시켰다고 쓰여 있지만 사실상 바로 그 이유에서 독자들은 아마도 그의 글에 훨씬 더 자유롭게 다가갈 수 있다. 그의 내적 동화 상태는 대명사 독자인 우리 역시 포괄한다. 그가 바빌로니아의 탈무드 학자들과는 반대로 자기 소설의 첫 장이 아닌 마지막 장을 찢어버린 것은 독자로서의 처신이었다. 텍스트의 시작이 없는 것은 독자의 영원한 불가능성을 암시한지만 끝이 없는 것은 독자의 무한한 가능성을 암시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