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19. 9. 23 월

by 홍석범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 샤갈의 자서전을 읽고 있다. 그는 자신이 사산아였음을 고백하고 당신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어머니 라고 쓴다. 마치 편지처럼.


노트북을 맡기러 갔을 때 다음 순서의 남자가 내 가방을 보고 어디서 샀는지를 물었다. 나는 우울한 와중에도 약간 우쭐해져서 니스라고 대답했다. 산 지오르지오 섬에서 같은 가방을 메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친 이탈리아 여자는 꽤나 연극적으로 샤갈의 이름을 불렀다. 약간 어눌한 영어로 자기는 샤갈과 생 폴 드 방스를 사랑한다면서.


사람들의 조용한 웅얼거림. 말을 멈추지 않는 두 일본 여자의 음성이 바닥 언저리에 뭉쳐 안개처럼 이리저리 기어 다니는 독일어와 혼합되지 못하고 공중에 애매하게 떠 있다. 식기와 그릇들이 부딪히는 소리.


계속 귀가 먹먹하다. 나는 기차에서 책을 읽을 수 없다. 그러나 카페에서도 오래 읽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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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이 그만큼 고귀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은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만큼 섬세해질 수는 있으며, 그의 삶은 그만큼 피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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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들의 파수꾼처럼 옆에 놓여 있는 카프카의 일기에서 오늘 날짜를 찾았다. 1912년 9월 23일. 그는 선고를 22일에서 23일까지, 저녁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단숨에 썼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백 년 전 바로 이 시간에 그는 육체와 영혼을 열어놓은 상태로 책상 앞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 어떻게 그 모든 것을 과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인가 ...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쓴 바로 그 시간에 독자가 그 이야기를 읽는다면 시간은 사라질까?

조금 건조하게, 게오르크가 딱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쨌든 살아보려고 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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