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혜 교수님을 위해 오르간 사진을 찾으면서 2016년에서 17년까지의 사진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넘겨봤다. 서초동의 한 교회에 새로 지은 오르간을 조율하기 위해 함부르크에서 아저씨가 왔던 게 16년 겨울이었고 내가 이곳에 온 건 17년 겨울이다. 그 사이 한 해 동안 나는 어학원을 다니는 백수였다. 아마도 불안했을(이 감정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 버린 건지 애초부터 없었던 건지 알 수 없어 가정법으로 쓸 수밖에 없다) 그 시기에 지금 돌이켜보면 크고 작은 즐거움들이 많았다. 당시에 나는 유독 행복했지만 그것이 아주 특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문득 깨닫게 된 사실은 그것은 분명 특별한 시기였다는 것이다. 각자의 길을 가던 사람들이 마치 어떤 교차로의 횡단보도에서 같은 신호를 기다리게 되는 순간처럼.
무엇보다 반도가 있었고 그곳으로 사람들이 자주 모였다. 그곳은 우리 집 바로 근처이기도 해서 나는 월세를 분담하지는 않았지만 때때로 사랑방의 주인 노릇을 했다. 크고 작은 일들과 성과들. 어느 순간 우리는 4년 전 학교 후배들을(사실은 우리 자신들을) 위해 열었던 집담회의 후일담을 준비하고 있었고 덕분에 나는 군 생활을 하며 새롭게 발견한 일기 쓰는 취미에 대해 어떤 중요한 말을 할 수 있었다. 그 말은 곧 교수님의 도움으로 작은 책의 서문이 됐다. 후일담 당일은 교수님에게 달리가 온 날이기도 하다. 손님들이 모두 떠나고 계속 비가 내려 눅눅해진 S 언니의 지하 작업실에서 그렇게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피부병이 걸린 새끼 고양이를 보기 위해 수건이 깔린 작은 종이 상자에 코를 박고 있었다. 반도에서 우리는 떡볶이를 먹기도 했고 라면을 부셔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옥자를 볼 때는 페퍼로니 피자를 시켰고 와인을 마실 때는 교수님이 어딘가에서 공수해온 귀한 과자와 구운 치즈를 먹었다. 보사노바나 옛날 한국 가요, 혹은 영화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편지를 쓰거나 진심 어린 말들을 했다. 그들에게 내 첫 작품집을 선보였던 날 밤 나는 설레고 떨렸었다. 한 권을 만드는 데 꽤 큰돈이 들었는데 그들은 돈을 모아 그 그림책을 한 권씩 사주고 나를 위해 세 권을 찍어 선물로 줬다. 이 기부는 나를 바꿔놓았다고 써야 할 것 같다.
그곳이 놀랍도록 다양한 기억들과 크고 작은 물건들, 벚꽃 가지, 중국산 찻잔, 오래되고 예쁜 종이들, 폴라로이드 사진, 동화 작가의 낙서, 공기 중에 녹아 있는 기분 좋은 말과 웃음소리들로 채워졌을 때 ─ 절대 긴 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을 시간이 흐른 뒤인 그때 ─ 우리는 방을 뺐다. 가구들이 유리문 옆에 쌓아 올려졌고 마지막 날 밤 K와 교수님은 소파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웠다.
우연히 그때의 사진들을 다시 보게 된 지금에서야 나는 그 모든 것이 특별했음을 알겠다. 그리고 더욱 단단하고 만질만질해진 그 특별함을 물속에서 꺼내 2년 늦은 일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