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19. 10. 23 수

by 홍석범

요즘 하고 있는 일은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음악이나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서너 시간씩 열선으로 스티로폼을 잘라 작은 집들을 만든다. 미적 감각이라고도 할 수 없을 아주 약간의 눈썰미와 상식적인 수준의 공간감만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어제 손이 가는 대로 뚝딱 만든 두 블록의 건폐율과 용적률이 귀신처럼 법규에 들어맞아 프라우 리는 왠지 이 프로젝트 예감이 좋다고 했다. 작은 육면체들을 붙였다 떼기를 반복하면서 잠깐 나의 손놀림이 너무 무의미한 것은 아닌가 하는 역시나 무의미한 생각을 했다. 폼 메이킹으로서의 폼 메이킹은 그다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최소한 어떤 미적 가치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다음 주부터는 애초의 약속대로 월요일과 화요일 오후에만 일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뒤죽박죽이던 생활 패턴에도 규칙을 부여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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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도 며칠 간격을 두고 이반과 막디에게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마도 브루스 나우만이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내가 뮐러보다도 나 자신과 사투하고 있을 때 신원혜 교수님이 나에게 해준 말은 큰 위로가 됐다. 나의 방식으로 건축을 하는 것. 사실 나는 그것밖에 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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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뒤에 가려 보이지 않는 신부의 녹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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