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19. 11. 2 토

by 홍석범

오늘은 여러 의미에서 그다지 생산적이지 못한 날이었다. 여기에 그 각각의 의미들이 무엇인지 굳이 나열해 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역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그가 탔어야 하는 기차가 출발해버린 경우를 하나의 비유로 적어둔다.


우연한 기회로 찾게 된 별 모양의 레브쿠헨이 처음 이곳에 왔을 무렵 잠깐 하숙했던 집을 떠올리게 했다. 지금 그곳에 대한 기억은 드 팔마의 영화, 비 온 뒤의 아스팔트 도로를 지나가는 바퀴들, 죽은 개와 기침 소리, 뭉친 고기가 들어간 맑은 국물의 수프 따위로 이루어져 있다. 아마도 그곳에서 어느 하룻밤 얇은 베일 같은 커튼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 모든 것들을 붙잡아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미학자인 후버 교수가 그녀의 수업 시간에 아름답다거나 좋다는 표현을 엄금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심미주의라는 말 역시 아무것도 지시하지 못하는 껍데기일 뿐이다. 그것은 사실 관점주의이다. 내가 추구하는 미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심미주의자들은 남의 말은 어차피 듣지 않는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자질은 철저한 자기 검열일 테지만 이 역시도 상대적이며 대부분의 경우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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