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 모두 축축하다. 구름이 안개처럼 변하고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11월의 날씨가 시작됐다.
오후에만 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지 않기 위해서다. 먹는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매사에 사무적인 독일인들과 달리 프라우 리는 밥과 가족적인 공동체 정신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부엌이 딸린 그녀의 사무실에서는 돌아가면서 한 명씩 점심을 준비해 모든 사람들이 같이 식사를 한다. 시간제인 비정규직의 경우 점심을 준비한 시간 역시 근무 시간으로 계산된다. 프라우 리는 이 운영 방침을 일종의 사회 기부라고 불렀다. 그날의 요리사가 장을 봐오면 재료비는 모든 식사원들이 공동으로 분담한다. 나 역시 두 번 사무실에서 요리했다. 식사를 할 때는 보조를 맞추며 간간이 대화에 추임새를 넣는다. 먼저 그릇을 비운 경우 턱을 괴고 애매하게 기다리거나 누군가가 방금 한 말에 관심 있는 척 고개를 끄덕인다. 영양가 없는 한담은 독일어로 이루어진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신적 노동이다. 억지웃음과 자동 반사적인 몇 개의 대답들이 완전히 수명을 다했을 때 나는 출근 시간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