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20. 2. 19 수

by 홍석범

돌이켜보면 내가 의식적으로 했던 최초의 건축 행위는 호그와트 성의 평면도를 그리는 것이었다. 나는 총 일곱 권의 책을 처음부터 꼼꼼히 다시 읽으며 성과 관련된 모든 문장을 받아 적은 뒤 그 기록들을 종합해 롤링 여사가 그렸을 도면을 역추적해 나갔다.


나는 성이라는 건축물 혹은 기호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었는데, 아마도 바로 그 이유에서 내 도면은 익명의 성을 차용해 이런저런 변형들을 가한 그럴듯한 모습이 아닌 정방형의 도형과 원으로 이루어진 원초적인 다이어그램에 가까웠다. 불완전한 형식이었지만 도면을 통해 건축을 사유하는 방식을 아마도 이때 처음 깨우쳤던 것 같다. 그 순간에는 전혀 있지 않았던 미래의 계획들을 지금 단지 소급적으로 덧붙이고 있을 뿐이겠지만 이 최초의 행위 속에 나의 모든 중요 주제들이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소설 형식과 결부되어 있고 약 15년이 흐른 지금 내가 준비하고 있는 마지막 프로젝트는 다시 이 최초의 행위로 되돌아왔다. 이 사실은 어쨌든 나에게는 의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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