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20. 6. 4 목

by 홍석범

도서관의 시작에 대해 적어둔다.


군 복무 당시 몇 개의 마술적인 책들이 소개되고 한 소년이 책의 유령을 만나 도서관의 비밀을 알게 되는 내용의 짧은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그 비밀은 책들의 목록과 분류법을 설명해 준다. 형편없이 감상적인 데다 미완이지만 어쨌든 하나의 은유와 수미쌍관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문학적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는 이 이야기 속의 도서관을 더 발전시켜 그려볼까 하는 것이 최초의 생각이었다. 그것은 문학적인 은유를 건축적인 언어로 다시 말하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다소 미심쩍은 이 계획은 내가 그것을 오랜 시간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는 단순한 이유에 의해 조금씩 구체화됐다.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머릿속에 그려보곤 했다. 이렇게 쓰는 것이 적확하다면, 그 도서관을 마치 새 건물처럼 설계하는 것은 종종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도서관은 그런 방식으로 지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꽤 흐른 뒤 나는 그 이야기를 제3의 시점에서 다시 써보려고 시도했다. 이제 소년의 이야기는 신화가 되고 그 이야기의 바깥에 위치하는 화자가 몇 가지 모순적이고 불가사의한 기록들을 토대로 그 도서관이 존재할지 모르는 장소를 유추한다. 약간의 환상적인 경로를 통해 화자는 결국 도서관을 발견하는 데 성공하는데, 이때 그를 통해 다시 되풀이되는 것은 한 인물의 특이성을 대변하는 책들의 분류법이다. 말하자면 그는 그곳에서 다른 누군가는 찾아내기 불가능했을 어떤 책을 찾아낸다. 이 원환성은 화자가 사실 소년이고 소년이 책의 유령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역시 미완에 그친 이 두 번째 시도는 아마도 프로젝트의 구상에 첫 실마리를 제공했다. 그것은 화자가 기록들을 조합하고 해석해 도서관을 발견했듯이 유적 혹은 폐허라는 림보 상태에서 건축적 원형이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재구축되는 내러티브에 대한 것이었다. 이 구상은 베를린과 아테네를 다녀오면서 생각한 것이다. 나는 파르테논을 보면서 선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비례와 완전무결함에 감명받은 것이 아니라 35년이 넘는 기간 동안 7만 개의 대리석 조각들을 다시 조립해가고 있는 고고학자와 석공들의 노고와 기술에 감명받았다. 그리고 그 믿을 수 없는 작업은 우리가 위치하는 건축의 시대가 돌과 상징 혹은 철과 비례가 아닌 복원의 시대임을 반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복원으로서의 건축이라는 개념은 건축 설계에 대한 일종의 매니페스토다. 그것은 이미 은유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우리가 도서관은 새롭게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복원된다고 말할 때 이 주장은 (이미 그 자체로 문학의 한 종속인) 역사라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일종의 문학적인 울림을 가지고 있다. 이때 새롭게 표현을 얻게 되는 것은 개개의 유적 혹은 건물이 아닌 어떤 정신이기 때문이다. 복원은 필연적으로 임의적 해석과 재편집을 통한 이어 짓기라는 사실은 도서관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다시 블랑쇼가 끝없는 글쓰기라고 불렀던 문학의 본질과 연결되며 돈키호테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다시 쓰는 데 성공한 어떤 작가에 대한 보르헤스의 기상천외한 이야기는 문학과 작가-독자뿐만이 아닌 모든 복원으로서의 건축과 건축가-복원가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그렇다면 도서관이 복원될 폐허를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프로젝트는 시작할 것이다. 미완의 평면인 폐허가 이미 수많은 고대의 도서관들의 부분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가설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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