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

2020. 9. 5 토

by 홍석범

코바흐까지의 여정은 피곤했지만 순탄했다. 막디와 그녀의 친구들 모두 그곳이 어딘지 몰랐다. 게오르그는 왠지 오래된 맥주 양조장이 있는 마을 이름 같다고 했는데 아마 크롬바허를 떠올린 것 같다. 기차로 왕복 열두 시간에 총 네 번 열차를 갈아타야 했는데 기적적으로 연착은 없었다. 카셀 빌헬름스회에에서 지역 기차로 갈아타고 한 시간 이상 논밭뿐인 들판을 지날 때 협궤 열차를 타고 알프스를 오르는 카스토르프를 생각했다.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씁쓸한 생각과 함께. 어쨌든 나 역시 점점 카스토르프가 ‘저 밑’이라고 불렀던 것과 멀어지고 있었다.


코바흐는 아시아인이 나밖에 없을 것 같은 시골 마을이다. 문화 시설이라고 할 만한 것은 그곳에서 발견된 화석을 전시하는 작은 박물관이 전부인 척박한 환경은 어쨌든 내가 생각했던 둘 중 하나의 길, 즉 규모가 작은 사무소에 파묻혀 은둔자처럼 훈련하는 마음으로 일을 배우는 데에는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역 앞의 상점가에는 노인들이 파라솔 밑에서 파르페를 먹고 있는데, 삼십 분이면 그곳을 포함해 시청, 교회, 집들과 묘지를 전부 통과해 마을의 반대편에 도착한다. 그곳엔 아무도 따가지 않은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사과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길의 끝에서부터는 들판과 말들이 있다. 나는 계속 걷기 위해 들판으로 나갔고 끝이 안 보이는 붉은 흙과 제비 떼가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콩밭을 지나갔다. 딱히 할 수 있는 다른 일도 없었다. 흐리고 직사광선이 없음에도 살갗의 미적지근함이 계속 성가시게 하는 답답한 날씨였다. 차라리 소나기라도 퍼부었으면. 다행히 점차 바람이 강해졌고 들판에는 그 세기를 저지할 만한 장애물이 아무것도 없었다. 옥수수밭과 간이 비행장 모두 평평하기 때문이다. 바람을 맞자 몸이 조금 편해졌고 목 뒤의 기분 나쁜 열감도 가시는 듯했다. 비행장의 잔디밭에 까마귀들이 띄엄띄엄 내려앉는 것을 보며 옥수수밭에는 허수아비가 없었는데 괜찮은 걸까, 나는 과연 여기서 살게 될까, 그렇다면 주말에 아까 본 말 목장에 나와 승마를 배워볼 수도 있지 않을까 따위의 생각들을 하면서 너무 멀리까지 나간 것을 후회했다. 벌써 세 시간이 지났고 발도 슬슬 아프기 시작해 마을 외곽의 집들 사이로 난 풀숲길을 따라 코바흐의 틈이라는 곳으로 돌아왔다. 동네의 자랑거리인 이 땅속 틈은 진귀한 지질학적 변칙 사례로, 그 사이에서는 마을을 문화 도시로 발전시켜 줄 금은보화 대신 공룡 뼈가 쏟아져 나왔다. 여기서 살겠다는 생각은 역시 바보 같은 생각이야. 나는 약간 심란해져서 다시 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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